[태원준 칼럼] 지겨움에 대하여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지겨움에 대하여

어설픈 진영논리에 갇힌 양당체제 바꿔야… 4월 총선에서 ‘황금분할’ 이뤄지길

입력 2016-02-10 18:00 수정 2016-02-10 2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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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가을 새정치민주연합이 삐걱거릴 때 나는 안철수 의원이 탈당하기를 바랐다. 새누리당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에서 쫓겨날 때도 ‘차라리 뛰쳐나와 당을 만들지’ 했다. 이유는 지겹기 때문이다. 두 정당의 지지기반인 ‘보수’와 ‘진보’의 구분은 이제 신물이 난다. 어설픈 ‘진영논리’와 유치한 ‘이분법’ 싸움이 지긋지긋하다.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 철학과 의지가 있다면 깃발을 들어야 할 때였다. 그게 누구든 나는 환영할 준비가 돼 있었다.

19대 국회가 굴러온 모습은 이 지겨움의 원인을 충분히 설명해준다. 지난 4일 기업활력제고특별법(원샷법)이 국회를 통과한 것은 발의된 지 7개월 만이었다. 정부의 경제활성화법안 중 서비스발전기본법은 3년6개월째 계류 중이다. 노동개혁 4법, 사회적경제기본법, 테러방지법, 북한인권법 등 숱한 법안이 같은 처지에 있다. 총선이 코앞인데 아직 선거구 획정도 못했다. 세월호특별법이 5개월 만에 통과된 건 차라리 성과라고 해야 할 판이다.

나는 이렇게 묶여 있는 상당수 법안에 별로 동의하지 않는다. 문제는 이게 좋은 법인지, 나쁜 법인지, 과연 국민에게 필요한 법인지 국회가 결정하지 못하는 상황에 있다. 국민을 대신해 의사결정을 하라고 뽑아놨는데 그걸 하지 못하는 이들을 4년이나 지켜봐야 했다. 국회선진화법 탓에 그리됐다는 진단은 블랙코미디에 가깝다. 날치기하지 말라고 법까지 만들었는데 날치기 아니면 일이 안 되니 다시 날치기의 길을 터주자는 말인가.

양당 체제의 정치구조를 바꿔야 한다. 양당 체제가 대변하는 보수-진보의 이분법 사회구조를 깨뜨려야 할 때가 됐다. 진영 논리가 망쳐놓은 가장 대표적 이슈는 세월호였다. 그 참사를 수습하고 재발을 막는 건 국민의 생명이 걸린 일이다. 두 진영은 이 죽고 사는 문제에서까지 편을 갈랐다. 뭐가 됐든 진영 논리로 바라보고 내 진영과 맞지 않으면 음모론에 안주하는 행태가 비극적 참사에 개입했다. 그 전면에 두 정당이 있었다.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저서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를 통해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서 2만 달러가 되는 데 17년이 걸렸다고 지적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오래 걸렸으며, 이는 보수와 진보의 시대착오적 진영 다툼에 따른 갈등 비용 때문이라고 봤다. 독재와 민주의 이분법이 유효하던 시대는 오래전에 끝났는데 우리 정치는 여전히 그 패러다임에 매몰돼 있다.

2만 달러가 된 지도 10년이 지났다. 아직 3만 달러대에 진입하지 못했다. 거꾸로 하락하는 중이다. 지난해 소득은 2014년의 2만8000달러보다 줄어들 게 확실하고, 올해는 더 떨어지리란 전망이 벌써 나온다. 일본과 독일이 5년 만에 이룬 것을 우리는 10년이 지나도록 못하는 상황. 송 교수의 진단이 옳다. 보수와 진보의 이분법 사회를 넘어서야 하며, 이분법 갈등이 현실정치에 표출되는 양당 체제를 벗어나는 게 그 방법일 수 있다.

한국 선거판에 ‘황금분할’이란 표현이 등장한 것은 민정당 평민당 민주당 공화당이 경쟁한 1988년 13대 총선이었다. 김재순 국회의장은 당시 이렇게 말했다. “이번 정당별 의석 분포는 두려움을 느낄 만큼 신비롭습니다. 4당 병립의 새 판도는 각계각층이 아무도 소외되지 않은 것입니다. 한국정치사에 대화와 타협의 전통을 세울 황금분할이 이뤄졌습니다.”

곡절 끝에 제3당이 출범했다. 모처럼 다당제 구도로 총선을 치르게 됐다. 어느 당도 ‘진영’에 기댈 수 없는 새로운 황금분할이 이뤄지기를, 그것이 이번에는 대화와 타협의 정치를 향해 제대로 작동하기를 기대한다.

태원준 사회부장 wjta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