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조배숙 <7> 이혼 겪고 힘들 때 새벽기도 시작 10여년 계속

[역경의 열매] 조배숙 <7> 이혼 겪고 힘들 때 새벽기도 시작 10여년 계속

목사님 말씀과 기도로 마음 안정… “차선의 삶이라도 최선을 다하자”

입력 2016-04-25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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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배숙 당선자(왼쪽)가 경기여고 동기로 1994년 서울고법에서 판사로 같이 근무하던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과 북한산에 올라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1982년 서울지검 검사로 첫발을 내디뎠다. 검사실에 출근하자 검사 밑에서 일하는 수사계장들이 불편해했다. 계장들은 여성 검사와 같이 일해 본 경험이 없어서 그런지 굉장히 자존심 상해했다. 주변에서도 남자가 여자 상사를 모시는 것이 보기 좋지 않다고 놀렸다. 여직원들도 덩달아 여성 검사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검사 임관 첫날부터 하나님의 선한 뜻을 나타내고자 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니 조금씩 적응하는 것 같았다. 검사로 근무하다가 4년 뒤인 86년 인천지검 검사를 끝으로 법관으로 전관했다. 솔직히 검사로 일하는 동안 엄청난 격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법원은 검사보다 스트레스가 덜하겠지’하는 막연한 생각에 전관했지만 법원도 만만치 않았다.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사후에 판단하는 것, 특히 객관적이고 솔직하지 않은, 이해관계가 대립돼 있는 양측 증인의 말을 듣고 사건을 재구성하고 가늠한다는 것은 보통 일이 아니었다. 정말 하나님이 지혜를 주시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다.

형사 사건의 마지막 순간까지 과연 이 사람이 범인인지 아닌지 확신이 가지 않는 경우도 있었다. 그럴 때는 정말 누구 말대로 꿈에 산발한 여인이라도 나타나서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해줬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수원에서 판사로 근무하다가 88년 대구로 전근했다. 89년에는 1년간 일본 게이오대와 세케대 객원연구원으로 연수했다. 91년은 내게 가장 힘든 시기였다. 81년 결혼을 했던 나는 당시 이혼을 하고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 있었다. 남의 일이라고 여겼던 이혼을 막상 겪고 나니 주변 사람들에게도 민망했고 나 자신에 대해서도 견딜 수 없었다. 이 세상에 외롭게, 외딴 섬에 홀로 남겨진 그런 기분이었다.

아침에 일어나면 밀려오는 공허함과 장래에 대한 불안감, 괴로움 때문에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럴 때마다 여의도순복음교회 강남성전으로 향했다. 새벽기도 때 목사님 말씀을 듣고 기도를 하면 어느새 마음이 안정됐고 새로운 소망이 생기는 것을 느꼈다.

‘그래, 누구나 최상의 삶을 살고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있다. 그럴 때는 차선의 삶을 살더라도 현재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 그렇게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최선을 다해 살았다고 말씀드릴 수 있는 것, 그것이 내가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91년부터 시작한 새벽기도는 거의 10여년간 이어졌다. 95년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다. 개업 2년 전에도 그런 마음이 있었다. ‘하나님, 제가 판사로 계속 일할 수 있지만 저는 변호사로서 일하는 게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언제 시작하면 좋을지 하나님께서 알려주십시오.’ 그러나 그때가 아니라는 대답을 주신 듯했다.

‘지금이 아니라면 언제인지 꿈으로 좀 알려주세요.’ 기도 후 어느 날 꿈에 내가 출석하던 여의도순복음교회 강남성전의 고석환 목사님이 나타났다. 그리고 서울 서초동 정곡빌딩 서관에 사무실을 크게 내라고 말씀하셨다. 그게 95년 4월의 일이다.

꿈에 정곡빌딩 서관이라고 해서 우선 그쪽 사무실을 알아봤다. 그런데 정곡빌딩 서관에는 나온 사무실이 없고 동관에는 사무실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동관 사무실을 계약하기로 했다. ‘분명 꿈에는 정곡빌딩 서관이라고 알려주셨는데….’

동관을 계약하기로 한 그날, 그 사무실의 변호사가 미안하다면서 사무실을 그냥 양보해달라고 했다. 본인이 뉴질랜드로 이민 가는데 사무실을 모두 후배 변호사에게 인계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통 사정을 하는 바람에 포기하고 말았다.

정리=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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