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엔들 잊힐리야 … 北에 두고온 고향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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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 크리스천의 망향가… 황해도 황주 석정교회 재건 꿈 이성팔 원로장로

입력 2016-06-24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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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성교회 김수향 집사가 이성팔 장로의 구술을 토대로 그린 6·25전쟁 직전 황해도 황주 석평리 석정교회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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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팔 원로장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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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팔 장로가 볼펜으로 꾹꾹 눌러 스케치한 이북의 석정교회 모습. 수성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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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6년 경기도 수원 수성교회 교회학교 교사와 학생들. 당시 교회학교 부장이던 이성팔 장로(맨 왼쪽 앉아있는 사람)가 안고 있는 아이는 큰 딸 이은혜(당시 5세) 권사. 수성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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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맥을 잇고 있는 이성팔 장로 가족. 지난달 15일 수성교회 본당 앞에서 아들의 안수집사 임직식이 끝난 뒤 둘째 딸 은지, 아들 기성, 부인 한진숙 권사, 이 장로, 맏딸 은혜 권사(왼쪽부터)가 빛과 소금처럼 살겠다는 다짐을 하고 있다. 수성교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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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팔(84) 수원 수성교회 원로장로는 하늘나라로 가기 전 꼭 이뤄야 할 꿈이 있다. 올해로 창립 110년이 된 황해도 황주 청수면 석정교회를 재건하는 일이다.

황주는 사과로 유명했다. 끊어진 경의선만 연결되면 몇 시간 안에 닿을 수 있는 곳이다. 이 장로는 일명 ‘돌우물’(석정)이라고 불리는 동네에서 태어났다. 오매불망 이곳은 북쪽으로 중화, 평양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사리원, 해주로 이어진다.

마을 한가운데엔 초가집채 만한 큰 장수바위가 있고 그 밑에서 물이 철철 쏟아져나왔다. 이 우물은 온 마을 사람들의 식수가 되었고, 물이 많이 흘러 차고 넘쳤다. 식수뿐만이 아니라 약수도 되어 먼 곳에서 신경통 환자의 발길이 이어졌다.

80호 주민들의 식수는 물론 농업용수로 사용할 정도로 엄청나게 큰 우물이었다. 마을에서 300m 지점에 소학교와 중·고등학교가 있었다. 높은 언덕 위엔 버드나무 탑에 매단 종이 돋보이는 석정교회가 우뚝 솟아 있었다. 돌우물교회로도 불리던 이 교회는 1905년쯤 4959㎡(1500평) 규모 언덕 위에 세워졌다. 교회 종소리는 맑은 날이면 인근 3㎞까지 들릴 정도로 크고 청아했다.

소년 성팔은 당시 송림공업전문학교 기계과 2학년으로 석정교회 주일학교 고등부 서기였다. 6·25전쟁 때 공산군에 징집되기 싫어 며칠간 교회 마루 밑에서 숨어 지내다 발각돼 인민군복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보름간 두 끼와 건빵으로 간신히 허기를 면하는 등 59일간 죽을 고비를 넘기다 극적으로 탈출해 ‘반공포로’ 이름표를 달고 3년3개월 동안 암흑의 세월을 보냈다. 그 후 국군에 입대해 2년8개월 동안 대한민국을 위해 헌신했다.

“젊은 날 공산주의자의 탄압 속에서 탈출해 북과 남에서 괴로운 시간을 보냈습네다. 다시 기억하기도 싫은 뼈저린 동족상잔을 되씹으며 이런 전쟁이 다시 없고 하루 속히 평화적으로 남북이 통일되는 날을 기원하며 뼛속에 사무치는 한국전쟁을 통해 주셨던 교훈을 깊이 생각해봅네다.”

지난 19일 오후 주일 저녁예배가 끝난 뒤 수성교회에서 이 장로를 만났다. 수성교회는 이 장로가 제대 후 고향 사람들이 살고 있는 수원에 정착해 제이교회에 다니다가 1963년 성도 8명과 함께 수원천의 자갈과 모래를 퍼 날라 새로운 교회를 지었다.

이 장로는 이북 사투리를 쓰지 않았지만 말투 끝에는 ‘∼네다’라는 억양이 살짝 묻어났다. 이 장로는 지금도 매일 새벽예배와 식사기도 때마다 석정교회 재건 그리고 평화통일을 위해 하나님께 간구한다. 66년째다. 그는 최근 ‘보물화첩’을 만들었다. 그 속에는 볼펜으로 그린 석정교회 옛 모습과 마을 스케치, 그리고 재건할 교회의 가설계도 등이 들어 있다. 이 장로는 시간만 나면 자신이 그린 가설계도를 들여다보며 하루빨리 통일이 되기를 기도한다.

-언제 고향을 떠났나.

“18세 때다. 강산이 여섯 번 넘게 바뀌었지만 꿈속에서나 어렴풋이 그려볼까 한 번도 가보지 못했다. 나는 지금도 굶주림으로 시달리는 북한 동포들의 영혼 구원과 남북통일을 위해 새벽마다 부르짖고 있다. 큰형님은 예수 믿는다고 대동강에서 총살당하고 남은 가족들은 모두 숙청됐다고 들었다. 모두 돌아가셨을 것이고 어렸을 때 헤어진 조카들을 위하여 매일 기도하고 있다.”

-반공포로였지만 북한으로 갈 수 있었는데.

“수용소 생활을 하면서 성경애독반을 조직해 소대별로 경쟁을 벌여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다. 신앙생활 덕분으로 용케 살아남았다. 1954년 1월 23일 포로 석방의 날이 밝았다. 공산군 장교들이 감언이설로 유혹했지만 속지 않았다. 나가는 문은 두 개였다. 좌측문은 북한으로 가겠다는 것이고, 우측문은 대한민국에 남겠다는 선택의 갈림길이었다. 60이 넘은 노인 몇 사람과 10대 초반의 어린이 몇 명 정도만 왼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이 지옥이라는 것을 그들은 모르는 것 같았다.”

-꼭 이루고 싶은 소원이 있다고 들었다.

“어려서 신앙의 기초를 세우고 말씀대로 살며 생명의 위협 속에 나를 살려준 석정교회 재건을 위한 설계도를 그려놓고 기도하고 있다. 내 생전에 통일이 안 되면 나는 평생 기도했기에 나의 후손들이나 누군가를 통해 하나님은 반드시 재건해주실 것으로 믿고 하늘 나라로 갈 것이다.”

-태신자 대상이 김정은이라고 하던데.

“몇 년 전 나의 전도 대상자(태신자)는 김정일이었다. 그가 공산주의의 악한 것을 버리고 하나님을 믿고 회개하고 돌아와 복음으로 평화통일이 될 것을 기도했는데, 우리 수성교회에 와 보지도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아쉬웠지만 이제 나의 태신자 대상은 그의 아들 김정은이다. 변함없는 마음으로 김일성 가문이 기독교 신앙을 회복할 수 있도록 매일 기도하고 있다.”

-해외선교 열정도 많다고 하던데.

“나는 교회 평신도들과 함께 1989년 태국선교후원회를 만들어 28년간 섬기고 있다. 태국의 현지인들에게 신학 공부를 시켜 사역자로 세운 뒤 4개의 교회를 세워 태국 부흥에 불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협력해준 많은 장로님과 성도님들께 큰 감사를 드린다. 몇 년 전 쓰나미가 있었던 그 지역에서는 사람의 종말이 이렇게 올 수 있구나 하며 많은 교인들이 모이고 있다. 너무나 감사하다.”

-반공교육도 하시는가.

“요즈음 젊은이들은 북한과 공산주의를 잘 모르는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 예수 믿는 자들을 모두 죽이고 숙청, 교회도 모두 없애버려 하나님 자리에 김일성 주체사상이 들어갔다. 이것은 명백한 우상숭배다. 나는 교회의 모임이나 교육부서 청년부에 가서 반공교육을 하며 나라사랑을 일깨워주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 대한민국을 사랑하시어 예수 믿어 복 받게 하신 것처럼 북한 땅도 사랑하시고 그들이 예수 믿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그들을 품고 기도해야 한다.”

-자녀교육법이 독특하다는 말을 들었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쉐마(‘너희는 들으라’) 교육을 통해 자손대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것처럼 우리 가족도 명절이나 가족 행사 때 모이면 지금까지 우리 가문에 역사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늘 나누며 고향 교회 재건을 허락해 달라고 기도드린다. 자녀들에게 어려서부터 신앙훈련, 선교, 전도, 헌신, 봉사, 충성을 가르쳤다. 아이들이 어릴 때 아침에 일어나 학교에 가기 전 기도하지 않으면 아침밥을 주지 않았다. 2녀 1남을 뒀다. 서울 꿈꾸는교회 장로인 큰사위(김호용·신한은행 지점장)와 큰딸(이은혜 권사), 두 손자 찬영(교육전도사)과 예찬(영국 웨일스에서 영성훈련)이 신앙가문의 맥을 잇고 있다. 작은 사위(조근실 집사·방송통신위원회)와 작은딸(이은진 집사), 두 손녀 하연과 하경이 믿음으로 잘 양육되고 있다. 아들(이기성 집사·인쇄소 운영)과 자부(임운주 집사·유치원 교사), 손녀 혜원과 손자 주원도 주 안에서 잘 크고 있다. 지금의 모든 일은 아내 한진숙(81) 권사의 눈물 기도와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내가 못하면 딸과 아들이 내 소원을 풀어줄 것이다.”

-복음통일을 주장하시는데.

“이제 주님 다시 오실 때까지 물이 바다 덮음같이 하나님의 영광이 이르고 남북이 복음으로 통일되어 1907년에 있었던 평양대부흥이 이 땅 가운데 다시 일어나길 기원하고 있다. 북한의 3040여개 교회가 다시 세워지도록 한국교회 성도들이 모두 한마음으로 손잡고 기도했으면 좋겠다.”

수원=글·사진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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