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포커스-김재천] 제왕적 대통령제는 없다

[한반도포커스-김재천] 제왕적 대통령제는 없다

‘견제와 균형’ 몰이해가 제왕 만들어… 힘은 헌법적 권한 아닌 설득력에서 나와

입력 2017-05-21 1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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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재직 시절 새벽 한두 시까지 백악관 집무실에 머무르며 일을 보는 습관이 있었다고 한다. 그 야심한 시간까지 도대체 무슨 일을 했던 것일까. 증언에 의하면 클린턴은 자신의 행정부가 발의한 법안을 관철시키기 위해 전화기를 붙들고 정치인과 언론인을 설득하는 ‘작업’에 몰두하다 자정을 훌쩍 넘기곤 했다는 것이다. 대통령중심제 국가에서 발의한 법안의 심의과정 중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헌법적 권한은 매우 제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대통령이 주도한 법안은 의회의 심의과정을 통과해 법제화되는 경우가 많다.

야구의 타자에 비유하자면 미국 대통령은 대부분 괜찮은 ‘타율’을 유지하고 있는 셈이다. 준수한 타율을 유지할 수 있는 대통령의 힘은 과연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대통령학 권위자 리처드 뉴스타트 교수에 의하면 이러한 힘의 원천은 대통령의 ‘헌법적 권한(Power of Constitution)’이 아니라 ‘설득력(Power of Persuasion)’에서 나온다고 했다. 대통령이 최고통수권자(Commander-in-Chief)가 아닌 최고소통가(Communicator-in-Chief)의 역할을 할 때 권한을 극대화할 수 있다고 했다. 탁월한 설득 능력을 보여줬던 클린턴은 의회와의 대화와 대국민 소통에 열심이었고, 따라서 여소야대의 상황에서도 상당히 높은 타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렇지 못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여대야소의 상황에서도 상대적으로 저조한 타율을 기록하고 있다.

한국은 2차 대전 이후 많은 신생국가들이 그랬듯이 미국식 대통령제를 채택해 운영해 왔다. 18세기 말 미국에서 유래한 이 제도는 당시 유럽 전제왕정의 권력집중을 예방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한 국가과제라는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Founding Fathers)’의 문제의식이 반영된 제도다.

그러다 보니 효율적 정책 집행에 대한 고려는 찾아보기 어렵고, 국가권력의 분산을 통해 권한의 집중을 예방하기 위한 제도적 장치들이 수두룩하다. 다수에 의한 통치는 매우 어렵게 되어 있고, 권력을 분점한 국가기관과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합의를 도출할 때에만 정책이 집행될 수 있게끔 고안되어 있다. 가까운 일례로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의료보험 개혁안을 법제화하는 데 거의 6년에 가까운 시간이 소요되었고, 이를 뒤집으려는 트럼프의 시도 또한 제도적 장벽에 부딪히고 있다.

한국 대통령의 독단적 정치행태는 많은 부분 대통령제에 대한 잘못된 이해에 기인하고 있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자주 사용하는 ‘대통령중심제’라는 용어 자체가 부적절하고, ‘견제와 균형(Checks and Balances)’ 또는 ‘권력분산제(Separation of Power)’가 제도의 취지를 더 잘 반영한 용어일 수 있다. 영국식 의원내각제하에서는 오히려 견제와 균형 또는 권력분산이라는 개념이 희박하고, 하원의석 과반을 차지한 정당이 배출한 총리는 헌법상 거의 완벽에 가까운 권한을 행사한다.

민주주의는 비효율적일 수 있고 특히 대통령제하의 정책집행 과정은 더욱 비효율적일 수밖에 없다. 본인의 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해 대통령은 다양한 정치세력과 끊임없이 대화하고 다수의 국민을 설득할 수 있어야만 한다.

보름이 채 안 된 기간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후 보여준 소통의 리더십이 공감을 자아내고 있다. 문 대통령은 임기 말까지 우리가 채택해 운영하고 있는 대통령제는 정책의 효율적 집행보다는 권력의 집중을 예방하기 위해 고의로 비효율적 요소를 삽입하여 만들어진 제도라는 사실을 망각해서는 안 된다. 제왕적 대통령은 있어도 제왕적 대통령제는 없다.

김재천(서강대 교수·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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