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영석 천하’ 5년, 예능판 어떻게 바꿨나… 흥행불패 비결은?

국민일보

‘나영석 천하’ 5년, 예능판 어떻게 바꿨나… 흥행불패 비결은?

전문가들이 본 ‘나영석 天下 5년’ 방송가 풍경

입력 2018-05-21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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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영석 PD.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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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월 케이블 채널 tvN을 통해 방영된 ‘윤식당 2’는 최고 시청률이 16%를 기록할 정도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사진은 이 프로그램에 출연한 배우 박서준 정유미 윤여정 이서진(왼쪽부터). CJ E&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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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여행’ ‘음식’ 단골 소재로 대부분 시청률이 5% 웃돌아
‘윤식당’ ‘삼시세끼’는 10%대나… 케이블채널 위상 업그레이드
예능의 새로운 가능성 제시… 당분간 인기몰이 계속될 듯


아버지는 “공무원이 장땡”이라고 했다. 그래서 아들은 1994년 연세대 행정학과에 입학했다. 진짜로 행정학을 공부해 정말로 공무원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다. 하고 싶은 일이 없었기에 아버지의 뜻을 따랐을 뿐이다. 고교 시절 적성검사를 하면 결과는 항상 ‘농부’였다.

남자의 삶이 달라진 건 대학교 1학년 때였다. 연극반 활동을 시작하면서 콘텐츠를 만드는 일에 재미를 붙였다. 주야장천 그는 연극반 동료들과 시간을 보냈다. 당시 남자는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고 한다. ‘더 효율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말을 걸고 싶다.’

그렇게 대학 시절이 끝나갈 즈음, 남자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가 방송사 PD 공채 시험에 응시했다. 운이 좋았던 건지 특별히 준비한 게 없는데도 KBS 시험에 합격했다.

아버지는 아들이 대학 시절 내내 행정고시를 준비했을 거라고 여겼다. 당시 남자는 배신감을 느꼈을 아버지께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KBS PD도 사실 공무원 비슷한 거예요.”

이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은 국내 대표적인 스타 PD인 나영석(42)이다. 2001년 KBS에 입사한 그는 2013년 tvN으로 이적해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했다. 방송 시장의 지형도까지 바꿔놓았다. 지난 5년간 국내 방송가는 사실상 ‘나영석 천하(天下)’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나영석 콘텐츠’의 어떤 매력이 안방을 들썩이게 만든 것일까.



예능, 방송가 판도를 바꾸다

20일 시청률 조사기관인 닐슨코리아에 따르면 지난 5년간 나영석이 메가폰을 잡은 작품은 대부분 시청률이 5%를 웃돌았다. ‘윤식당’이나 ‘삼시세끼’ 같은 프로그램은 10%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다. 케이블 채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대단한 성적을 거둔 셈이다.

나영석의 작품들은 각기 다른 내용이어도 비슷한 분위기를 풍기곤 한다. 출연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가감 없이 담아내면서 그 위에 연출자의 시선을 포개는 구성을 띤 게 특징이다.

이승한 TV평론가는 저서 ‘예능, 유혹의 기술’에서 나영석 콘텐츠를 ‘한없이 일상에 가까운 예능’이라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그의 성공 전략은 ‘뺄셈’에 있다고 적었다. “예능에서 ‘댄스 신고식’을 요구하는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고, 한때 극에 달했던 자막의 사용은 점점 줄어드는 추세다. 인위적인 요소를 걷어내는 것. 그 흐름의 맨 앞자리에 나영석이 있다.”

폭소보다는 미소를 짓게 만드는 ‘나영석스러운’ 작품은 어떻게 탄생한 것일까. 그 시작은 나영석이 2012년에 펴낸 에세이 ‘어차피 레이스는 길다’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나영석이 속해 있던 ‘1박2일’(KBS2) 제작진은 2007년 7월 이 프로그램의 첫 촬영을 앞두고 조그만 6㎜ 카메라로 촬영 기간 내내 출연자의 모든 모습을 카메라에 담기로 결정했다.

이런 결정을 내린 이유는 출연진이 터뜨릴 불만을 조금이라도 눅이기 위해서였다. 카메라가 따라다니면 출연자들이 밥을 못 먹더라도, 야외에서 한뎃잠을 자더라도 강하게 어필하기 힘들 거라고 판단했다. 그런데 녹화를 마치고 ‘결과물’을 보는데 6㎜ 카메라엔 재밌는 장면이 가득 담겨 있었다. 나영석은 “복불복을 찍을 때 그들의 표정은 전문 예능인의 그것이지만 6㎜ 카메라 속의 그들은 소풍 나온 철없는 남자들로 변해 있었다”고 적었다.

“방송적인 재미로만 보면 복불복이 훨씬 웃기다. 그런데 (6㎜ 카메라로 촬영한) 이 그림은 보고 있으면 흐뭇해진다. …지금 당장 방송에 낼 자신은 없지만 이 범상치 않은 그림들이 앞으로는 방송의 중심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생겼다.”

나영석 콘텐츠는 방송가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그의 작품들로 인해 방송가에는 ‘힐링’ ‘여행’ ‘음식’ 같은 테마가 단골 소재로 자리 잡았다. 케이블 채널의 위상도 달라졌다. 예능에 시즌제가 도입된 것도 나영석이 바꿔놓은 방송가 풍경이라고 할 수 있다.



“나영석의 최고작은 삼시세끼”

그렇다면 나영석이 지난 5년간 연출한 작품 가운데 최고작은 무엇일까. 국민일보가 대중문화평론가 5명(김교석 김헌식 정덕현 정석희 하재근)에게 물었을 때 가장 많이 언급된 작품은 삼시세끼였다. 5명 가운데 3명이 삼시세끼를 나영석의 대표작으로 꼽았다.

정덕현 평론가는 “예능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젖힌 작품”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과거 예능에서는 출연자들에게 ‘미션’을 내리거나 게임을 하도록 했지만 삼시세끼는 달랐다”며 “이 프로그램을 통해 ‘나영석표 힐링’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하재근 평론가는 “나영석의 작품 세계가 가장 잘 녹아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했으며, 김헌식 평론가는 “현재 등장하는 많은 예능 콘텐츠의 모티브가 된 작품”이라고 평했다.

김교석 평론가와 정석희 평론가는 나영석 콘텐츠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꽃보다 할배’를 꼽았다.

김교석 평론가는 “예능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프로그램”이라며 “확실한 팬덤을 구축하고 있는 만큼 나영석의 작품은 당분간은 계속 인기를 끌 것”이라고 전망했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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