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인숙 (11) 아이 스스로 삶에 목소리 내도록 ‘아동 힘 키우기’ 돌입

국민일보

[역경의 열매] 김인숙 (11) 아이 스스로 삶에 목소리 내도록 ‘아동 힘 키우기’ 돌입

아동은 보호 대상이고 이들의 행복은 부모와 지역사회에 달렸다고만 생각

입력 2020-01-07 0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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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숙 국제아동인권센터 기획이사(오른쪽 두 번째)가 2002년 12월 서울 강남구 수서종합사회복지관에서 ‘제3차 동아시아·태평양지역 아동·청소년 포럼’ 참가자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일하는 여성으로서의 내 삶은 작은 자 중에서도 가장 작은 자, 전쟁고아를 돕는 일로 시작했다. 긴급구호가 필요한 시기에는 자선이 불가피하다. 그 기간은 짧을수록 좋다. 나는 긴급구호 단계를 넘어 주민의 잠재력을 끌어내 자립을 도왔다. 낙후된 지역사회 개발과 아동의 삶의 질 개선을 위해서다. 주민이 힘을 키워 삶의 변화를 이끌고 아동의 행복한 삶도 보장한다는 이론에 근거했다.

미국 국무부의 전문가 교환 프로그램에서 돌아온 뒤에는 지역사회에서 작은 자로 평가받던 농촌 여성의 잠재력에 집중했다. 이들이 지역사회의 변화 인자로 활동하도록 자립심과 능력 키우기에 열정을 쏟았다. 지역사회 개발과 아동복지 사업에서 한 걸음 더 나가 여성 발전으로 아동의 이익을 도모하는 방식이다.

그러다 내 활동에 대전환을 준 계기가 생겼다. 1989년 세이브더칠드런 스톡홀름 연맹총회 이틀 전, 같은 곳에서 열린 아동인권 국제콘퍼런스에서 유엔아동권리협약을 접한 일이다. 아동을 보는 새로운 관점이 이때 열렸다. 아동은 보호 대상이고, 이들의 행복은 오롯이 부모와 지역사회에 달렸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아동이 발전하고 성숙할 권리와 이들의 참여를 간과했다. 그간 일했던 방식이 바꿔야 함을 느꼈다. 쉬운 일은 아니었다. 이를 알리고 교육·훈련하는 가운데 점진적 변화를 이뤄야 해 시간이 오래 걸렸다.

유엔아동권리협약 채택 후 196개국이 이 협약을 비준하고 이행을 약속했다. 협약 이행을 다짐하는 세계정상회담은 1990년에 열렸다. 2002년 5월엔 사상 최초로 ‘유엔 아동특별총회’가 미국 뉴욕에서 열렸다. 협약 이행 10년의 성패를 논하는 자리였다. 유엔과 각국 정부, 비정부기구 관계자 등 3000여명이 참석했는데 이 가운데 150여명이 어린이와 청소년이었다.

아이들은 이 기간 열린 ‘아동 포럼’에서 자기 나라에서 협약이 얼마나 잘 이행되는지 등에 대해 스스로 목소리를 냈다. 어른은 성과를 말했지만, 이들은 삶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말했다. “어른은 아이를 위해 일한다면서, 왜 아동을 빼놓고 결정하는가”란 문제를 제기했다.

‘아이가 살기 좋은 세상,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 ‘아동이 행복한 세상 함께 만들어요!’ 유엔 아동특별총회 참석 아동이 내놓은 슬로건이다. 어른이 같이 풀어나가야 할 과제로 받아들였다. 이 과제를 풀기 위해 나는 사명과 가치를 공유한 동료와 함께 배우고 일했다. 세이브더칠드런에서 해마다 열리는 연맹총회, 매년 두세 차례 열리는 아시아·태평양지역 회의에 빠짐없이 참석해 아동인권 관련 지식과 경험 등을 배우고 공유했다. 이때 영국 대표에게 귀한 글을 받은 게 기억난다. 존재론적으로 ‘아동은 누구인가’의 답을 찾도록 도와준 글이다. 지금도 보물처럼 간직하고 있다.

“그대의 아이라고 해서 그대의 아이는 아닌 것… 그대를 거쳐 왔을 뿐 그대에게서 온 것은 아니다.… 비록 그대와 함께 있을지라도 그대 소유가 아닌 것을. 아이에게 사랑을 줄 순 있으나 그대의 생각마저 줄 순 없다. 아이는 그들 자신의 생각을 가졌기 때문이다.”(칼릴 지브란의 ‘예언자’ 중)

존재론적으로 아동을 알고 이해하는 것이 아동인권 옹호의 시작이다. 나는 이를 국제 사회에서 배웠다. 이후 사업장으로 돌아와 아이가 자기 삶에 목소리를 내도록 ‘아동 힘 키우기’에 돌입했다. 협약 채택 이후, ‘아이가 행복한 세상’을 만들기 위해 아이와 어른이 함께 노력하는 방향으로 들어선 것이다.

정리=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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