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연수 (5) 나는 가톨릭 수녀였고 그는 개신교 전도사였다

[역경의 열매] 김연수 (5) 나는 가톨릭 수녀였고 그는 개신교 전도사였다

첫 서원 후 복학, 공부 정진해 시인 등단… 같이 수업 받게 된 남편과 운명적 만남

입력 2020-05-11 00:05
  • 미션라이프 카카오플러스 친구등록하기
김연수 사모(왼쪽에서 두 번째)가 1977년 수도여자사범대학 졸업식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 학사모 대신 베일을 썼다.

수녀원에서 나는 김연수라는 이름 대신 김 아네스 로즈로 불렸다. 아네스는 어린양이라는 의미였고, 로즈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꽃송이란 뜻을 담고 있다. 나는 ‘수녀가 되려고 태어난 사람 같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수도생활의 매력에 빠져들었다.

3년의 수련을 거친 후 나는 첫 서원을 했다. 그리스도 예수를 세상 그 누구보다도 더 사랑하기 위해 세상의 사랑을 포기하는 정결을 서원했다. 세상의 재물은 물론 내 의지까지도 주님 앞에 봉헌했다. 그런 내게 수녀원에서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공부를 마치라는 소임을 줬다.

나는 자퇴했던 수도사대 국어국문학과에 3학년으로 복학했다. 3년 전 학교를 떠날 당시 학교 측에서 자퇴 후 복학을 권했던 만큼 다시 돌아오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학교로 돌아온 난 오탁번 교수님의 지도를 받으며 시문학 공부에 정진했다. 성과도 있었다. 졸업하던 해인 1977년 3월 ‘시문학’을 통해 문단에서 1차 추천을 받았고, 이듬해 10월 추천이 완료되면서 명실공히 시인이 됐다.

등단과는 별개로 대학 졸업과 동시에 계성여중 국어교사로 임용됐다. 여기서 난 담임교사, 학교신문 담당, 시화반 지도교사 등을 겸직했다. 교사 4년 차 때는 종교주임을 맡았다. 10년 가까운 수도생활에 종신서원까지 한 나였지만, 막상 학생들을 지도하려니 성경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교육관에서 유 데레사쟌 수녀님이 지도하는 ‘베델성서반’이 진행 중이라기에 들어가기로 했다. 그날의 그 선택이 내 인생의 중요한 갈림길로 들어서는 걸음임을 알지 못한 채 나는 유 수녀님이 계신 교육관으로 갔다.

“유 수녀님, 예고도 없이 찾아와서 죄송해요. 저도 베델성서 공부하려고 왔어요.” 갑작스런 방문에 양해를 구하며 문을 열었다. 유 수녀님은 어떤 젊은 남자와 대화중이었다. “로즈 수녀님, 잠시만요.” 유 수녀님은 나를 그 청년에게 소개했다. “두 분 서로 인사해도 좋을 것 같네요. 이분은 최일도 전도사님, 그리고 이분은 김 아네스 로즈 수녀님이세요.” 남편과의 첫 만남이었다. 나는 웃음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남편은 그때 나를 보고 하얀 프리지어 꽃이 웃는 듯, 코스모스가 인사하는 듯했다고 한다. 그러나 나는 남편의 그런 마음을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잠깐 인사만 했을 뿐이었다. 게다가 나는 수녀였고 그는 개신교 전도사였다. 그가 천주교 성서 모임에 있는 것 자체가 뜻밖이라 별 관심을 안 뒀던 것 같다.

그날 이후 나는 매주 화요일 베델성서를 공부했다. 최 전도사라는 청년도 매주 빠지지 않고 참석했다. 몇 주가 지났을까. 성경공부가 끝나자 그가 시문학이라는 월간지를 들고 내게 다가왔다. “시 좋아하세요”라고 물으며 시 한 편을 펼쳐 들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가 짚고 있는 시는 내가 김연수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시였다. 그가 내 본명을 알 리 만무했다. 이런 우연이 있을까.

정리=황인호 기자 inhovator@kmib.co.kr


국민일보 문서선교 후원
갓플렉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