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애에 맞선 하나님의 의병] (29) 경찰이 ‘동성애를 성적지향’으로 치부해 벌어진 비극

국민일보

[동성애에 맞선 하나님의 의병] (29) 경찰이 ‘동성애를 성적지향’으로 치부해 벌어진 비극

입력 2020-05-12 0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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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명을 살해한 제프리 다머가 1991년 경찰에 체포됐을 때의 사진.

제프리 다머는 미국 위스콘신 주의 중산층 가정에서 자랐다. 아버지 라이오넬은 화학박사였다. 다머는 아이큐가 145일 정도로 지능이 높았고 예의 바른 학생이었다.

다머는 일찍부터 동성 성관계를 시작했다. 첫 동성 성경험은 14살 때 이웃집 소년과 했다. 그 경험은 만족을 주지 못했다. 더 자극적인 방법을 찾다가 죽은 남자와 관계를 맺기로 했다. 그래서 살인을 계획한다.

다머는 몇 개월 동안 집 앞을 지나치는 젊은 남자를 주시했다. 그와 성행위를 하고 싶다는 생각에 사로잡힌 어느 날, 살인을 하려고 둔기를 들고 수풀 속에 숨어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그가 오지 않자 단념했다.

그러나 여기서 돌이키지 않고 1978년 6월 18일 길가에서 히치하이크하던 당시 19세의 힉스를 살해했다. 잘생기고 마른 체구의 남성인 힉스는 다머가 성적인 환상을 품어온 이상형이었다. 다머는 힉스에게 맥주와 마리화나를 권했고 여기에 힉스의 머리를 둔기로 내리쳐 기절시킨 후에 목을 졸라 살해했다.

다머는 이후 밀워키에 정착해 아파트를 얻어 독립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가 일찍 잡힐 뻔한 사건도 있었다. 1991년 5월 30일 그는 동남아 라오스 출신의 코네락 신사솜폰이라는 14살 소년에게 사진 모델이 돼주면 돈을 주겠다며 자신의 집으로 데려갔다. 소년이 수면제를 탄 콜라를 마시고 정신을 잃자 성폭행을 했다. 다머는 술을 마시기 위해 외출했고 그사이 소년은 가까스로 깨어나 경찰에 도움을 요청했다. 다머는 그 소년이 자신의 애인이라 주장했고 경찰은 ‘어, 그래’하고는 소년을 다머에게 도로 내줬다.

경찰관들은 일지에 ‘동성애인들끼리 가볍게 다투었음’이라고 기록하고 그 자리를 떠 버렸다. 경찰이 떠나자마자 소년은 다머에게 잔혹하게 살해됐다. 이후 두 달간 다머의 범죄는 극에 달했다. 나중에 이런 과정이 드러나자 밀워키 경찰은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소년의 죽음에 책임을 져야 할 두 명의 경찰관은 이후 ‘성적 취향은 자신들이 알 바 아니라’는 말만 남겼다. 최종적으로 무죄 판결을 받았고 해임에 대한 항소심에서 승소했다. 경찰노조에서 직업을 되찾기 위해 정당하게 싸운 ‘올해의 경찰관’으로 선정돼 시민들을 분노하게 했다. 그중 한 명은 2005년에 밀워키시 경찰청장까지 승진했다.

다머는 피해자가 오면 일단 정신을 혼미하게 만드는 약을 먹이고 묶은 다음 고문하거나 신체를 훼손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다머는 92년 2월 15일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94년 11월 28일 교도소 안에서 죄수들끼리 화장실 청소를 하다가 시비가 붙어 변기 뚜껑에 머리를 난타당해 죽는다.

프로이트는 동성애를 정상이 아닌, 하나의 변이(variation)라고 봤다. 70년대 대표적 엽기 살인마였던 영국의 닐슨, 미국의 게이시, 다머는 동성애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다머의 사례에서 보듯이 “동성애는 단순히 성적지향이니 아무 문제가 없다”라는 경찰관의 안이한 태도는 소중한 생명을 구출해 낼 기회를 걷어차고 말았다.

‘동성애는 사랑의 일종으로 아무런 폐해가 없다’는 무책임하고 순진한 태도가 무시무시한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음을 말해주는 역사적 교훈이다.

염안섭 수동연세요양병원장

정리=백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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