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매들 일흔 넘어 익힌 삐뚤빼뚤 한글 폰트 됐다

할매들 일흔 넘어 익힌 삐뚤빼뚤 한글 폰트 됐다

칠곡군, 한글·영문 폰트 무료 보급

입력 2020-12-16 04:07
권안자 이원순 추유을 김영분 이종희 할머니(왼쪽부터)가 자신들이 개발한 ‘칠곡할매’ 폰트로 쓰여진 푯말을 들고 기념촬영 하고 있다. 경북 칠곡군 제공

“애미야, 이거 내 글씨로 맹글(만들)었다. 한글 뽄트(폰트)란다.”

고희(古希)를 넘긴 나이에 뒤늦게 한글을 배운 경상도 ‘할매’들의 삶과 애환이 녹아있는 손글씨가 무료 글꼴로 탄생했다.

경북 칠곡군은 할매시인으로 알려진 할머니들의 글씨체를 한글과 영문 폰트로 제작해 16일 홈페이지를 통해 정식으로 배포한다고 15일 밝혔다.

군은 시집 발간과 영화 제작으로 이어진 성인문해교육의 성과를 점검하고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국민들에게 어머님의 따스한 품과 고향의 정을 전달하기 위해 폰트를 제작했다고 설명했다.

폰트는 글씨체 원작자의 이름을 딴 칠곡할매 권안자체, 칠곡할매 이원순체, 칠곡할매 추유을체, 칠곡할매 김영분체, 칠곡할매 이종희체 등 5가지다.

칠곡군은 지난 6월 폰트 제작을 위해 성인문해교육을 받고 있는 400여 명의 할머니 가운데 개성 있는 글씨체의 할머니 다섯 명을 선정했다.

선정된 할머니들은 자신의 글씨체가 디지털화 돼 영구히 보존된다는 소식에 마지막 유언 남기듯 한자 한자 신중하게 글자를 썼다. 4개월 동안 펜을 몇번씩 바꿔가며 연습에 몰두해 한 사람 당 2000여 장에 달하는 종이를 사용하는 등 폰트 만들기에 정성을 기울였다.

폰트를 만드는 과정에서 할머니들을 힘들게 한 건 바로 영어와 특수 문자였다. 상대적으로 익숙하지 않은 영어와 특수 문자의 경우 작업하는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폰트가 일부 공개되자 주민들은 “가슴이 뭉클해졌다” “저보다 글씨를 더 잘 쓴다” “작년에 돌아가신 어머님 생각이 난다”는 등의 다양한 반응으로 응원했다.

폰트 제작에 참여한 이종휘(78) 할머니는“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나. 죽고 나면 우리 아들, 손주, 며느리가 내 글씨를 통해 나를 기억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백선기 칠곡군수는 “문화의 수혜자에서 공급자로 우뚝 선 어르신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했다.

칠곡군은 지역홍보 문구와 특산물 포장지에 칠곡할매 폰트를 사용한다는 방침이다.

칠곡=김재산 기자 jskimkb@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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