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 암울한 데드크로스 시대

국민일보

[돋을새김] 암울한 데드크로스 시대

신창호 사회2부장

입력 2021-01-05 04:07

‘인구 데드크로스(Dead Cross)’는 한 해 동안 태어나는 신생아 수보다 사망자 수가 더 많아지는 현상을 지칭하는 용어다. 인구 데드크로스가 나타나는 국가는 경제 생활 보건 미래전략 등 사회의 모든 분야에서 총체적 위기를 맞게 된다. 왜냐하면 인구의 구성비가 변하기 때문이다.

인구가 준다고 뭐 그리 큰 변화가 있을까 싶다. 오늘 당장 먹고살기 힘들어지는 것도 아니고, 내일 경천동지할 변동이 발생할 것 같지도 않기 때문이다. 매일 일하며 살아가는 필부필부(匹夫匹婦)들에게 인구 문제가 별일은 아닐 수도 있다. 그런데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가파르게 떨어지는 이 인구절벽의 하강곡선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만큼이나 무시무시한 일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소위 비혼(非婚)이 가장 먼저 관습화된 유럽과 미국도 인구 데드크로스 상태에 돌입했을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미국 독일 영국 프랑스 등은 많지는 않지만 매년 인구가 늘고, 가임여성 1명이 출산하는 아기의 수를 나타내는 출산율도 1.7~2명을 지속적으로 유지하고 있다. 세계 20위 이내의 경제력을 가진 나라 중 인구 데드크로스를 당한 국가는 딱 두 나라뿐이다. 동해 건너의 일본, 그리고 지금의 한국이다.

10년 전부터 인구 데드크로스에 직면했던 일본은 초고령화 사회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15~64세 생산가능인구는 매년 급격히 주는데,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65세 이상 고령인구는 늘어난다. 국가와 가정, 젊은층이 부담해야 할 고령자에 대한 보건 및 사회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국가도 기업도 기술혁신 같은 미래전략을 구사하기보다는 현실 유지에 여념이 없게 됐다. 인구 데드크로스가 시작되기 전부터 일본은 국가 전체적으로 정체의 위기에 빠졌다. 고도성장의 그늘이 1990년대부터 밀어닥쳤고, 경쟁에만 내몰린 젊은 세대 사이에선 결혼과 미래를 포기하고 오로지 ‘오늘’을 ‘혼자’ 사는 비관적 풍조가 감염병처럼 번졌다.

일본의 선제적 경험을 통해 추론해보면 우리나라의 미래도 암울하기만 하다. 지금 당장은 수출과 내수를 회복해 경제만은 잘 돌아가게 하면 될 듯하지만, 조만간 정체와 마이너스 성장의 시대를 맞이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보건 의료비의 90% 가까이를 건강보험에 의지하는 구조를 감안하면, 젊은 세대의 늙은 세대에 대한 보건 의료비 부담은 하늘을 떠받치는 아틀라스의 어깨만큼이나 무거워질 게 틀림없다.

그렇다고 젊은 세대가 편히 결혼해 아이 낳고 가정을 꾸릴 사회적 환경이 제공되는 것도 아니다. 천정부지의 집값과 교육비 등은 그들의 한 달 벌이 전부를 잠식한다. 아이를 낳아도 행복하게 키울 교육적 환경이 갖춰진 것도 아니다. 초등학생 때부터 밤 11시까지 공부해야 하고, 학원에 가야 하고, 입시지옥에 시달려야 한다. 아이를 돌봐주는 공공보육 시스템이 마련돼 있지도 않다.

2010년 1.23명이던 출산율이 10년 만에 0.92명으로 쪼그라들고, 3년 전만 해도 한 해 40만명이던 신생아 수가 2020년 27만5000여명으로 급전직하한 것은 바로 이런 삶의 환경 탓이다. 한국의 인구 데드크로스는 일본처럼 고도성장기를 압축적으로 통과하며 생겨난 악순환의 결과이지만, 앞으로는 이 인구절벽이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가혹한 고통의 연쇄작용을 일으킬 개연성이 크다.

세금을 낼 사람들조차 줄어드는 지방 붕괴의 시나리오는 벌써 현실화되기 시작했다. 지방이란 한쪽은 공공영역조차 유지할 수 없는데, 수도권이란 다른 한쪽은 또다시 집값 상승, 교육 경쟁의 점입가경이 연출될 게 틀림없다. 암울한 미래 전망이 조금씩 바뀔지 두고 볼 일이다.

신창호 사회2부장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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