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집단면역과 무임승차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집단면역과 무임승차

정승훈 사회부장

입력 2021-04-29 04:08

솔직히 말하면 지난해 정부가 코로나19 백신 구매에 적극 나서지 않는 이유를 설명할 때 수긍했었다. 정부의 논리는 “새롭게 개발된 백신의 효과나 안전성 등이 완벽하게 검증되지 않은 만큼 다른 나라의 접종 상황을 살핀 후 구해도 늦지 않다”였다. 당시만 해도 정부 설명대로 확진자 수는 통제 가능했고, 우리의 방역체계는 감염 상황에 충분히 대응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정부의 조치가 국제적으로 ‘집단행동 딜레마(Collective Action Dilemma)’로 비쳐질 수도 있겠다는 정도의 걱정은 했다.

집단행동 딜레마는 공동체의 다수 구성원이 공동체 전체의 장기적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대신 개별적이고도 즉각적인 만족을 위해 행동하는 상황을 가리킨다. 전 세계적 팬데믹 종식을 위해 백신 접종이 유일한 대안인 상황에서 다른 나라의 상황을 지켜보며 접종을 서두르지 않겠다는 태도는 자칫 국제사회의 노력에 무임승차하려는 모습으로 비쳐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백신에 소극적이었던 정부의 대응이 국제적 논란이 되진 않아 다행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우리는 방역적으로도, 외교적으로도 큰 부담을 지게 됐다. 한동안 백신 수급을 둘러싼 논란이 벌어졌고, 그 과정에서 부작용에 대한 불안감이 가중됐다. 백신을 다수 확보한 미국은 동맹국까지 줄을 세우며 백신을 지렛대로 다른 조건까지 요구하는 모양새다. 일찍 백신 접종에 나섰던 국가들의 경제 전망은 장밋빛으로 바뀌고 있지만 나름 선방했다는 우리의 경제 전망 기대감은 앞선 국가들과의 백신 접종률 차이만큼 벌어져 있는 듯하다.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했다는 당시의 판단이 결국 국민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는 차츰 더 드러날 것이다.

고령층 등 취약계층과 각 분야 필수요원의 접종이 긴박하게 돌아가는 시점에 가장 큰 문제는 접종 동의율이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일부 백신의 이상반응에 대한 우려 탓에 “조금 더 상황을 지켜본 후에 천천히 맞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지난해 우리 정부가 백신에 대해 취했던 입장이 오버랩된다.

집단면역은 전체 구성원의 70% 이상이 백신을 접종하거나 감염 후 항체를 갖게 돼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이나 백신에 면역반응이 일어나지 않은 사람도 보호받게 되는 상황을 말한다. 충분히 많은 사람이 백신을 접종하면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이들도 감염 위험성이 거의 사라진다는 얘기다. 3600만명 백신 접종에 사력을 다하고 있는 건 이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을 지켜보다 천천히 맞겠다”는 생각을 하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집단면역 달성은 그만큼 늦춰진다. 본인과 가족이 그 판단 때문에 위험에 처할 확률도 높아진다. 백신 접종에서 개별적 이익을 위해 행동했을 때는 집단행동의 딜레마 가설과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질 수 있음을 우리는 정부의 전례에서 이미 확인했다. 본인의 이익을 위해 선택한 행동이 공동체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은 물론 당사자에게도 불이익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주 시골의 부모님은 백신을 접종했다. “백신 맞는다고 해야겠지?”라고 처음 전화하셨을 때부터 “맞는 게 더 안전하다”고 말씀드렸지만 속내는 복잡했다. 두 분 다 큰 수술을 하신 데다 아버지는 투병 중이어서 경미한 이상반응이라도 치명적일 수 있다는 불안감이 있었다. 더 지켜봐야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아직까지 별 이상반응은 없었다.

곧 일반인들의 접종이 시작된다. 이상반응의 가능성을 두려워하기 보다는 코로나19에서 자유로워진 후 얻게 되는 나와 가족, 이웃의 이익이 훨씬 크다는 점을 믿는 태도가 중요하다. 집단면역은 결국 우리 각자의 선택에 달렸다.

정승훈 사회부장 sh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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