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노마드의 삶

[살며 사랑하며] 노마드의 삶

이원하 시인

입력 2021-05-12 04:06

나는 한곳에 정착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주하며 사는 노마드의 삶을 실천하고 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느끼는 수많은 감정으로 시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감정마다 어울리는 도시가 다 따로 있다. 사랑하기에는 제주도가 좋고 이별하기에는 헝가리 부다페스트가 좋다. 이렇듯 시를 쓰기 위해 각각의 감정에 따라 정착지를 옮겨 다니는 삶. 빠르게 구경하고 빠르게 느껴야만 하던 여행에서 늘 뒤처지다가 선택하게 된 정착하는 삶에 대해 나는 아무런 불만이 없다.

물론 노마드의 삶을 실천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내겐 용기가 없다. 늘 새로운 곳으로 떠날 때마다 걱정하고 긴장한다. 오죽하면 정착 초반에는 몸이 굉장히 아프다. 긴장감을 동반한 몸살은 6주간 지속되며 신기하게도 정확히 6주 뒤에는 자연스레 치유된다. 치유됐다는 증거로 내 정신은 요리하고 싶어진다. 적응하는 동안 의존하던 식당에서 벗어나 직접 요리해 먹고 싶은 충동에 휩싸이게 된다.

현재 거주 중인 부다페스트에서도 정확히 6주 만에 요리가 하고 싶어졌다. 마트에서 계란을 구매하는 것으로 이곳에서의 진정한 삶이 시작됐다. 왜 계란이 우선이었냐면, 계란만 있으면 뭐든 요리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빵을 구워 먹을 수도 있고 라면에 넣어 먹거나 기름에 살짝 구워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또한 계란찜도 가능하며 잘 익혀서 굴리면 순식간에 계란말이도 완성된다.

사실 이번 정착지에서는 적응 기간이 평소보다 오래 걸릴 줄 알았다. 수없이 쏟아지는 동양인 혐오범죄 기사를 보면서 두려웠기 때문이다. 길가에서 서양인과 눈만 마주쳐도 심장이 찢어질 것처럼 긴장되곤 했었다. 그럼에도 평소처럼 6주 만에 적응하게 된 이유는 순전히 웃음 덕분이었다. 낯선 이곳에서 어설프게 행동할 때나 실수를 저지를 때마다 친절히 웃으며 도와준 부다페스트 사람들 덕분이었다. 이들의 따스한 웃음이 나를 무장해제시켰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