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에 산다] 벵에돔, 꼬리가 긴 게 중요하지 않다

국민일보

[제주에 산다] 벵에돔, 꼬리가 긴 게 중요하지 않다

박두호 전 언론인

입력 2021-11-06 04:02

지난주 오후 마침 물때도 좋고 시간도 나 밑밥을 조금 개 마을 방파제로 나갔다. 제주시 구좌읍 하도리 동동방파제. 집에서 5분 거리다. 이곳을 아는 낚시인이라면 서고 싶은 자리가 있는데 이날은 여행 온 듯한 젊은 커플이 캠핑의자 2개에 간이테이블까지 펴고 천연덕스럽게 피크닉 분위기로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이 오래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나는 “실례합니다”라며 옆에 바짝 붙어 자리를 잡았다. 밑밥을 몇 차례 뿌리고 채비를 던졌다. 그들은 낚싯대를 바닥에 놓고 미끼를 꿰고 있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채 5분이 되지 않아 나에게 벵에돔 한 마리가 올라왔다. 25㎝급 괜찮은 씨알이다. 옆에 있던 그들이 “와, 벵에돔. 크다”며 탄성을 질렀다. 그러고는 “긴꼬리인가? 검은 테가 있나 봐” “와, 검은 테다. 긴꼬리네”라고 외친다. 낚시는 처음 하는 게 틀림없어 보이는데 도대체 긴꼬리 벵에돔은 어디서 들었나. 그들에게 긴꼬리 벵에돔이 왜 그리 중요했을까. 그러고 보니 얼마 전 낚시를 소재로 한 그 방송이 대상어를 긴꼬리 벵에돔으로 한 적이 있었다. 그 방송이 이들을 이렇게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제주도 방파제에서는 초보 낚시꾼들을 종종 본다. 관광객들에게 제주도→바다→낚시는 매력 있는 연상이다. 바닷가 낚시점에선 낚싯대와 줄이 감긴 릴, 찌에 바늘까지 채비가 된 장비를 싼 것은 3만원이면 살 수 있다. 그것을 구입한 관광객 초보자가 찌를 제대로 던지지도 못하면서 방파제로 나온다. 그들은 채비를 던지고 입질을 기다리는 시간보다 수시로 엉킨 채비를 풀고 미끼를 꿰고 던지는 시간이 더 오래 걸린다. 그러고도 정확한 위치에 던지지 못해 엉뚱한 잡어에게 미끼를 내주기 십상이다. 섭섭하게 들리겠지만 낚시인들에게 그들은 성가신 이웃이다.

벵에돔은 밑밥으로 잡는 고기다. 물고기를 유인하기 위해 던지는 밑밥은 크릴과 집어제를 부슬부슬하게 물에 갠 것이다. 밑밥을 뿌리면 잡어들이 모여들고 시간이 지나며 벵에돔이 소식을 듣고 찾아온다. 밑밥을 뿌리고 채비를 던지면 잡어가 오지만 밑에 있던 벵에돔이 더 빨리, 더 먼저 부상해 크릴이 달린 바늘을 물고 달아난다. 벵에돔을 모으기까지 오랫동안 밑밥 품질을 해야 하고 벵에돔이 들어오지 않으면 끝내 만나지 못하고 마는 경우도 많다.

그런데 낚시점에서 하루 낚시하겠다고 3만원짜리 낚싯대를 산 관광객에게 차마 밑밥을 권하지는 못한다. 크릴과 집어제를 섞은 밑밥이 1만~2만원 되고 밑밥을 투척할 주걱이 3000원에서 비싼 것은 10만원이 넘는다. 밑밥을 담을 밑밥통도 사야 한다. 3만원 낚싯대를 산 초심자에게 밑밥과 주걱, 밑밥통을 사야 벵에돔을 잡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는 강심장 낚시점주는 없다. 피크닉형 낚시꾼인 젊은 커플도 낚싯대는 샀는지 모르지만 단지 3000원짜리 크릴 미끼만 들고 벵에돔을 잡겠다고 온 것이다. 꼬리가 긴지 짧은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벵에돔이든 자기 낚싯대에 한 번 걸어보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제주도에 가 본 것과 안 가 본 것과의 차이와 같다.

박두호 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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