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파리와 글래스고의 온도차

국민일보

[창] 파리와 글래스고의 온도차

신준섭 경제부 기자

입력 2021-11-27 04:08

기후변화를 의제로 한 최고위급 회담인 유엔기후변화협약 제26차 당사국총회(COP26)만큼 이상과 현실의 충돌이 첨예한 회의도 드물 것 같다.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2015년 11월에 열렸던 21차 COP다. 프랑스 파리 외곽에 위치한 르부르제 컨벤션센터에 전 세계 152개국 수장이 모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등 세계를 주름잡는 스트롱맨(Strong Man) 대부분이 얼굴을 드러냈다.

시 주석이 이례적으로 빨간색이 아닌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개막식에 참석했던 것도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정상급 인사들의 드레스 코드가 마치 말이라도 맞춘 것처럼 파란색 또는 녹색으로 통일돼 있었다(한국은 좀 예외였다). 각국 정상에게 수 분씩만 허락했던 기조연설이 몇 시간씩 지루할 정도로 이어지는 모습을 접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당시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150개국 이상의 지도자들이 모인 정치적 순간은 다시 안 올 수도 있다”고까지 말했었다.

파리에서 총기난사 사건이 발생한 직후였는데도 이들의 발길이 멈추지 않았던 데는 이유가 있다. 1997년 3차 COP에서 채택한 교토의정서를 대신할 새로운 질서를 수립해야 할 시기였다. 자국 이익에 최대한 부합할 수 있는 결과물을 만들어야 한다는 각국 정상의 판단이 무거운 몸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지구온난화 방지라는 이상과 함께 경제적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파리에서 만들어질 신기후 체제로 인해 파생할 신재생에너지 시장이 2030년까지 1400조원 규모로 커질 것이라는 추산을 내놨다. 영화 ‘파 앤드 어웨이’마냥 먼저 깃발을 꽂는 이가 임자인 시장에 각국이 눈독을 들였다.

이상과 현실이란 두 가치가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리다 보니 현장 열기도 뜨거웠다. 산업혁명 이전과 비교해 지구 온도가 얼마나 상승할 때까지 참아줄 것이냐가 논제였다. 2도나 1.5도냐를 두고 각국 실무진이 밤새워가며 논쟁을 벌였다. 최소한 지구 온도 상승을 막아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이미 합의가 끝난 상태에서 각론을 두고 회의가 이어진 것이다. 결론적으로 ‘2도보다 상당히 낮은 수준’이라는 문구에 전 세계 195개국이 동의했다. 온실가스 배출량이 어마어마했던 중국이나 인도가 동참했다는 점에서 성공이라는 평가가 뒤따랐다. 의장국이던 프랑스의 로랑 파비우스 전 외무장관은 “이번 합의문 도출로 각국 협상단이 고개를 펴고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됐다”고 평했다.

구속력 있는 문구인 ‘후퇴 금지(no back sliding)’를 39쪽의 합의문에 담아낸 21차 COP로부터 6년. 지난 13일 영국 글래스고에서 폐막한 26차 COP의 풍경은 사뭇 달라졌다. 파리에서 약속했던 2020년 이후 각국의 감축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모인 자리의 온도는 상당히 냉랭했다. 2050년까지라는 시한에 동의하지 않는 곳들이 두드러졌다. 중국은 206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겠다는 지난해 발표를 고수했다. 인도는 49년 뒤인 2070년까지 탄소중립을 하겠다고 밝혔다. 석탄 퇴출 역시 이들의 반대로 불발됐다. 후퇴 수준은 아니지만 온실가스 감축에 대한 의지가 느껴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어울릴 법한 결과물이다.

지구 온도를 낮춰야 한다는 이상을 접은 것도 아닌데 왜 이런 상황이 됐을까. 코로나19라는 예상치 못한 질병이 만들어 낸 현실적인 상황이 영향을 미친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지우기 힘들다. 지난해 세계 경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코로나 확산으로 국경은 봉쇄되고 물류 이동마저도 제한을 받았다. 각국은 전례 없는 재정정책을 펼쳐 가며 자국 경제 피해를 최소화하기 급급했다. 후퇴했던 만큼 전진하려다 보니 그만큼 많은 자원이 필요한 상황이다. 호주와의 외교적 갈등으로 석탄 부족에 시달린 중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탄소중립이란 이상보다는 현실에 더 눈을 집중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2015년 파리와 2021년 글래스고의 사례를 비교해 보면 이상만으로 세상이 바뀌지 않는다는 점을 무심코 깨닫게 된다. 지구 온도를 낮추기 위한 노력에 동참하는 국가를 늘리려면 결국 경제 성장이 뒷받침돼야만 한다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2050년까지 탄소중립을 선언한 일은 칭찬할 만하지만 후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경제에 신경을 써야 한다. 차기 정부가 꼭 유념해야 할 일이다.


신준섭 경제부 기자 sman321@kmib.co.kr

많이 본 기사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