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비·후각 저하·험한 잠버릇… 3~10년 뒤 파킨슨병 가능성”

국민일보

“변비·후각 저하·험한 잠버릇… 3~10년 뒤 파킨슨병 가능성”

[영 파워 닥터] 아주대병원 윤정한 교수

입력 2021-11-29 20:31
아주대병원 윤정한(왼쪽) 교수가 손떨림으로 병원을 찾은 70대 남성의 파킨슨병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손의 강직 정도를 확인하고 있다.

고령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대표적인 퇴행성 신경질환인 파킨슨병의 국내 유병률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29일 국민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국내 파킨슨병 환자는 2016년 9만6766명에서 지난해 11만1313명으로 5년새 15% 증가했다. 지난해 기준 전체 환자의 93%가 60세 이상 고령층이었다. 아주대병원 신경과 윤정한(42) 교수는 “여성은 70대, 남성은 80세 이상에서 높은 발생률을 보인다.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것에 따른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파킨슨병 증상에 대한 환자나 의사의 인지도가 높아져 진단율이 높아졌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나이가 젊다고 파킨슨병에 안 걸리는 건 아니다. 45세 이하에서 발병한 경우 ‘젊은 파킨슨병’에 해당된다. 지난해 50세 미만 1579명(1.4%)이 파킨슨병으로 병원을 찾았다. 윤 교수는 “조발성 파킨슨병은 고령에 생기는 파킨슨병에 비해 유전적 요인이 더 강하고 진행 속도가 느린 편이지만, 경제·사회활동이 활발한 연령이라 자신이 느끼는 삶의 질이 더 나쁠 수 있기 때문에 장기적인 치료 계획이 필요하다”고 했다.

파킨슨병은 중추신경계에서 윤활유 역할을 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도파민’이 부족해 생긴다. 도파민의 80% 이상이 소실되면 움직임이 느려지고 근육이 뻣뻣해지는 증상이 나타난다. 환자들은 몸이 무겁다거나 기운이 없다고 호소하기도 한다. 이전과 비교해 무표정하거나 눈깜빡임이 줄고 말소리가 작아지기도 한다. 손동작이 느려지고 걸을 때 팔을 흔들지 않거나 보폭이 작아지고 다리를 끄는 증상이 나타날 때도 의심해야 한다. 보행장애로 자꾸 넘어질 정도가 되면 꽤 진행된 상태다.

파킨슨병의 주요 증상 중 하나인 ‘떨림’은 수전증 등 다른 이상운동질환과 헷갈릴 수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 수전증은 글씨를 쓰거나 물건(수저·물잔 등)을 드는 등 활동할 때 좌우대칭으로 손을 떠는 반면, 파킨슨병은 주로 가만 있을 때 한쪽 손의 떨림을 경험한다. 흔히 ‘챗머리 흔든다’고 하는 머리 떨림도 파킨슨병으로 오인될 수 있는데, 이는 대부분 목에 생긴 근긴장이상증(사경)일 확률이 높다.

파킨슨병을 알츠하이머성 치매로 잘못 알고 있는 이들도 의외로 많다. 치매는 기억을 담당하는 뇌의 퇴행성 변화로 기억력 등 여러 인지기능이 떨어지고 결국 일상생활을 거의 못하게 된다. 파킨슨병은 동작이 느려진다는 점에서 완전히 다르다. 부족한 도파민 보충 약물이나 수술 치료를 받으면 증상이 호전되고 충분히 일상생활로 복귀할 수 있다.

다만 파킨슨병과 엄연히 다른 ‘파킨슨증후군’은 예후가 좋지 않다. 파킨슨증후군은 도파민을 만드는 신경세포 외에 뇌의 여러 부위에도 문제가 생겨 약물이나 수술 치료에 잘 반응하지 않는다. 윤 교수는 “비유하자면 파킨슨병은 양성, 파킨슨증후군은 악성인 암이라 할 수 있다”며 “다행히 파킨슨 증상을 보이는 환자의 90%는 파킨슨병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파킨슨병은 레보도파 등 도파민 보충 약물로 처음 5~8년 정도 치료하면 어느정도 효과를 볼 수 있으며 이후 약물 반응이 약해질 경우 뇌심부자극 수술(뇌 안에 전극을 삽입해 비정상적 신호 차단)을 시도할 수 있다. 이 치료법은 2000년 국내 도입돼 매년 200~300건씩 시행되고 있다. 양쪽 뇌에 시행 시 비용이 3500만원 안팎이지만 희귀·난치병 산정특례 지원(본인 부담 10%)에 따라 350만원 정도만 부담하면 된다. 단 약물이나 뇌심부자극술로 병 자체를 멈출 순 없다.

최근에는 머리를 열지 않고 뇌 밖에서 초음파로 신경을 자극하는 치료법도 시도되고 있으며 장(십이지장)에 관을 뚫고 도파민을 일정 시간마다 주입하는 ‘도파민 펌프’도 개발되고 있다.

줄기세포를 도파민 신경세포로 분화시켜 죽은 도파민 세포를 대체하게 하는 연구도 활발히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이식된 줄기세포가 오랫동안 살아있어야 하고 다른 부작용을 유발하지 않도록 해야 하는 해결 과제가 있다.

윤 교수는 “한국과 중국에서 한약이나 침술의 파킨슨병 치료 효과에 대한 연구보고가 일부 있으나 대부분 한약만 투여하고 위약(가짜약)과의 효능 차이를 비교하지 않거나 한약의 유효 성분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없는 경우가 많아 아직 한약과 침의 효과는 확실히 입증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여느 질병처럼 파킨슨병 역시 조기 발견이 중요하다. 윤 교수는 “파킨슨병은 특히 동작 느림이나 떨림, 보행 장애 같은 주요 증상을 경험하기 3~10년 전부터 변비와 냄새를 맡지 못하는 후각 저하, 자면서 악몽을 꾸고 소리 지르거나 발차기를 하는 등 험한 잠버릇을 보이는 ‘렘수면행동장애’가 흔히 나타난다”면서 “이런 전조 증상을 주의 깊게 살피고 일찍 진단받아 관리하면 질병의 진행을 늦출 수 있다”고 강조했다.

윤 교수는 젊은 의사지만 나이 지긋한 환자들의 눈높이에 맞는 상담과 진료로 정평이 나 있다. 잔뜩 긴장하며 진료실 문을 들어서는 환자들에게 난해한 의학적 용어를 늘어놓기 보다는 환자들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와 궁금해하는 것들에 초점을 맞추기 위해 노력 한다. 그는 “환자들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건네며 편안한 분위기를 만들다 보니 공감해 주고 신뢰가 쌓이는 것 같다”고 했다.

글·사진=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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