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비호감 대선 더욱 부채질하는 ‘세금 정치’

국민일보

[여의춘추] 비호감 대선 더욱 부채질하는 ‘세금 정치’

고세욱 논설위원

입력 2021-12-03 04:06

3개월여 앞둔 이번 대선은 역대급 비호감 대선으로 불린다. 치열한 정책 경쟁이 아닌 여야 후보들의 각종 의혹과 부적절한 언행, 후보 캠프의 막말·궤변이 끊이지 않아서다. 여기에 최근 선거의 유불리에 따라 조세 정책을 뒤집는 이른바 ‘세금 정치’까지 가세하며 혼탁함을 더하고 있다.

지난달 30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는 여야 합의로 소득세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여기에는 가상자산(암호화폐) 과세 유예와 1주택자 양도세 완화안이 포함됐다. 암호화폐 과세는 내년 1월 1일부터 수익의 일정 부분에 세금을 매기기로 했는데 이를 1년 더 늦췄다. 원래 올 10월 시행이었는데 인프라 구축 작업을 이유로 3개월 더 유예했었음에도 결국 대선 후로 미뤄졌다. 기획재정부가 “내년 과세가 바람직하고 과세할 수 있는 기반을 갖췄다”고 누차 얘기했지만 여야에는 마이동풍이었다. 500여만 명에 이르는 2030 암호화폐 투자자(업비트 기준)들의 표심을 의식한 입법 뒤집기였다. 1년 전 여야가 합의해 국회에서 통과시킨 제도는 시행도 못한 채 표류하는 신세가 됐다.

부동산 세제의 경우 점입가경이다. 여야는 같은 개정안에서 1주택자 양도세 비과세 기준을 현행 9억원(시가 기준)에서 12억원으로 높이기로 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는 “부동산 시장의 불안 심리를 자극하지 않을까 우려스럽다”고 평가했는데 여당은 한술 더 떠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 방안까지 꺼냈다. 선의로 해석하면 다주택자의 양도세 부담을 낮춰 시장에 매물을 늘린 뒤 부동산 가격 안정을 꾀하겠다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부동산 불로소득을 뿌리 뽑아야 한다며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안을 담은 지난해 7·10 대책을 밀어붙인 게 현 여당이다. 평소에 ‘다주택자=투기꾼’ 식으로 여론몰이를 하던 여당이 표를 얻기 위해선 안면 몰수하고 자신의 정책마저 부정하는 행위는 쉽게 이해하기 어렵다. 홍 부총리도 참다못한 나머지 2일 “반복적인 중과 유예에 따른 정책 신뢰도 훼손, 무주택 1주택자 박탈감 야기 등 부작용이 우려된다”며 다주택자 양도세 인하에 대해 논의한 바도 추진 계획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다만 대선이 가까워 올수록 부동산 민심을 의식한 여당의 공세가 거세질 텐데 정부가 얼마나 버틸지는 의문이다.

여당의 변덕은 이번 대선을 앞두고 유독 심한 것도 아니다. 지난해에는 여당이 2030 동학개미들의 표심을 노려 대주주 주식양도세 기준 하향(10억원→3억원)에 제동을 걸어 무산됐다. 지난해 총선 직전 당정청이 코로나19 관련 긴급재난지원금을 소득 하위 70%에 지급하기로 했다가 여당이 여론을 이유로 전 국민 지급을 주장하는 바람에 결정이 바뀌었다. 선거에 영향을 주는 여론의 움직임만 있으면 언제든지 태세전환할 수 있는 게 현 여당의 모습이다.

정책을 뒤집으면 수혜를 보는 측도, 피해를 보는 측도 있다. 여기서 수혜자들이 더 표에 도움이 된다 판단하기에 정당은 베팅을 한 것이다. 사실 가장 큰 피해자는 어찌 보면 여당과 함께 정책을 짠 정부다. 국민과 공공 이익을 위해 최선의 경제 정책을 마련했다고 선전했는데 같이 손잡은 여당이 잇따라 뒤통수를 친 셈이기 때문이다. 거시 경제를 총괄하는 기재부와 홍 부총리는 정책의 왜곡을 최일선에서 지켜보고 있다. 홍 부총리는 지난해 개정된 임대차 3법 때문에 살던 서울 마포 전셋집에서 쫓겨나고 보유한 경기도 의왕집이 초기에 팔리지 않아 자칫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 뻔했다. 세입자에게 위로금까지 주고 내보냈으니 재산상 손해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싫은 내색 없이 정부 정책을 진두지휘했다. 낯 간지럽긴 했지만 부동산 급등세를 전 정부 탓으로 돌리면서 정책 정당성을 강변하기도 했다. 부동산 대책 26연패의 주역이라는 조롱도 감수했다. 그럼에도 생색은 의원들이 내고 욕은 혼자 뒤집어쓰는 처량한 신세가 됐다. 속으로 전임 대통령의 말처럼 “내가 이러려고 부총리가 됐을까” 한탄하지 싶다.

오늘날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을 대표하는 운하변 주택은 폭이 좁고 높게 지어졌다. 과거 정면 벽의 면적에 비례해 세금을 매긴 탓에 부담을 줄이고자 이런 형태의 건물이 많아졌다(로먼 마스의 ‘도시의 보이지 않는 99%’). 조세 제도의 흔적이다. 우리 후손들은 세금 정치로 변질된 누더기 세제의 흔적을 보고 2021년도 한국을 어떻게 판단할까.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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