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딜레마 공수처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딜레마 공수처

지호일 사회부장

입력 2021-12-03 04:08 수정 2021-12-03 04:08

나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출범 전부터 이 기관에 부정적인 편이었다. 검찰 개혁의 명분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공수처가 그 무게를 감당할 힘이 없거나 오히려 개혁의 반대편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이는 공수처가 태생적으로 처한 ‘어정쩡함’의 탓도 있다고 본다. ‘공룡’과 ‘종이호랑이’ 사이를 배회하듯 조직이 너무 커서도, 너무 작아서도 안 되는, 검찰스러움은 배제하되 검찰만큼의 수사 능력은 담보해야 하는 딜레마. 공수처는 이런 모순적 요소들을 안은 채 쫓기듯 가동됐다.

공수처 규모의 문제는 법안 논의 때부터 논란이 있었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가진 제2의 검찰권력 탄생에 대한 불안과 견제가 흘렀다. 그 결과 현행 공수처법은 소속 검사의 정원을 처장과 차장을 포함해 25명으로, 수사관 수는 최대 40명으로 제한했다. 검찰 내 순천지청과 비슷한 규모의 조직에 ‘고위공직자 범죄 척결’을 전담하라는 버거운 짐을 지운 것이다.

더군다나 담당하는 사건의 성격상 공수처를 향해서는 늘 거센 정치 바람이 불기 마련이다. 맷집이 약하면 휘둘리는 법. 그렇다고 덩치를 키우자니 곧장 ‘공수처 공룡화’ 비판이 일 것이 자명하고, 무엇보다 수사 사정권에 들어 있는 정치권력이 공수처의 비대화를 놔두지 않을 터다.

단순히 크기만의 문제는 아니다. 검찰 견제가 큰 목적인 공수처는 ‘검찰색’을 빼는 데 치중하다 보니 수사력 부분은 간과된 채 설계된 측면이 있다. 인적 구성만 봐도 검찰 출신은 공수처 검사 정원의 절반을 넘지 못하게 돼 있다. 검사 경력자를 대거 수혈했다가 검찰 DNA가 조직에 이식되는 일은 차단하려 한 것으로 보이지만, 그 대신 공수처는 수사 경력이나 실무 경험이 부족한 아마추어들로 안을 채워야 했다.

그 결과가 지금의 위태로운 공수처 모습으로 나타나는 중이다. 상황을 보자. 출범 1년이 돼가도록 여전히 뒤죽박죽, 우왕좌왕 모습이다. 수사는 결과로 말한다는데 기소 건수, 구속 건수 모두 제로(0)다. 성과로 내세울 만한 수사도 없다. 스스로 사건을 캐내는 능력도 보여준 적이 없다. 언론이 제공하는 정보, 외부에서 날아온 고발장에 달려드는 모습이 보일 뿐이다.

수개월째 매달려 있는 고발 사주 의혹 수사도 고전 중이다. 위법 절차 논란이 일었던 김웅 국민의힘 의원 사무실 압수수색은 급기야 법원에서 압수수색 자체를 취소하라는 결정이 나왔고, 손준성 검사 수사에서도 한 칸 한 칸 나갈 때마다 덜커덩 소리를 내고 있다. 칼자루를 쥔 쪽은 공수처인데, 베테랑 검사들이 공수처를 상대로 외려 수사 ABC를 가르치고 있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이런 상황이 전적으로 공수처 구성원들의 책임이겠나만, 공수처가 공정성과 중립성마저 의심받고 있다는 점은 심각하게 봐야 한다. 실제 공수처와 여권이 같은 시나리오를 두고 움직이는 듯한 장면도 종종 연출되고 있다. ‘무능한 데다 정치적이기까지 하다’는 야권의 비난은 과해 보이긴 하지만 딱히 반박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신생 조직의 시행착오 정도로 이해해 줄 부분도 있다. 다만 자칫 제대로 뿌리내리기도 전에 개혁 대상이 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이미 야권에서는 공수처 무용론, 폐지론이 공공연히 거론되고 있지 않나. 검찰 수사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평을 듣는 마당에 공수처마저 미덥지않다 보니 국가 부패수사 총량이나 질적 하락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크다.

그래도 공수처를 믿고 안착을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지금이라도 진지하게 폐문을 비롯한 공수처의 미래에 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할까. 이래저래 딜레마다.

지호일 사회부장 blue5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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