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속도 아닌 방향… 숱한 역경이 감사의 문 열어줘

삶은 속도 아닌 방향… 숱한 역경이 감사의 문 열어줘

[나의 사역 나의 변화] 대전 하늘영광순복음교회 윤민자 목사

입력 2021-12-1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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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영광순복음교회 전경.

우리 교회는 대전시 서구 도마동에서 압둘람굴에 모인 이들처럼 가난하고 병들고, 영 혼 육이 지치고 상한 몇 가정이 모여 예배를 드림으로 시작되었다. 1997년, 사람을 무조건 믿고 무척이나 좋아했던 나는 사람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면서 10여년 넘게 운영하던 5개의 학원운영을 실패하게 되었다. 이리 치이고 저리 밟히면서 사랑했던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버림받았고, 또한 사랑했던 사람들을 물질로 힘들게 하는 채무 범법자가 되었다. 찬란하게 존중받던 인생이 180도 바뀐 것이다. 난 죽음의 사선을 넘나들었다. 그러던 1998년 2월 초 전봇대 아래 핀 작은 민들레를 통해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보냄 받은 자이고,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은 창조주시며 사랑이심'을 깨달았다. 그리고 1998년 6월 어느 날 새벽예배 후 사랑과 권능의 주님은 선물을 바리바리 싸들고 날 찾아오셨다. 샘솟는 물댄동산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퍼주고 퍼줄수록 넘쳤다(사58:11). 열심히 사람만 보고 달렸던 성격 급한 내게 삶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는 것을 값을 톡톡히 치르고 배운 것이다. 생존을 위해 다시 시작했던 SLT학원 강의실을 뜯어 방석 몇 개 놓고 2003년 7월 15일에 창립예배를 드렸다. 저녁이 되면 부도나고 악신이 들리고 몸이 병든 사람들이 찾아와 나음을 받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들 속에서 가난해도 행복했고 사역이 즐거웠다.

교회를 방문해주신 많은 분들이 종종 ‘윤 목사의 외부 사역과 비교하면 교회의 사이즈가 너무 작다고 큰 장소로 옮기라고 그래야 성도들이 채워진다’고 권면들을 하신다. 그때마다 나는 ‘하나님의 사인이 없으시다’라고 대답한다. 사실은 옮길 생각을 해 본 적이 없기도 했고 초가삼간이라 할지라도 주님의 임재가 충만했기에 성도들과의 만남이 행복하다. 목회를 하면서 인생들이 얼마나 악하고, 외롭고 고독한지, 메마르고 황폐한지를 알게 되어 한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일이라면 밤이 늦도록 성도들과 함께 사역에 힘을 쏟고 있다.

하늘영광순복음교회 성도들이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호떡전도를 하고 있다.

우리 교회는 C교단에 소속하여 창립되었다. 그리고 2007년 1월 C교단 법인 건물을 우리에게 위임해 준다하여 성도들과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고 입주하였다. 그러나 2년 약속기간이 끝나자 갑자기 큰돈을 요구했다. 우리교회는 완전 빈손으로 길거리로 나와야 할 상황이 되었다. ‘사람 말 믿지 말고 계약서에 단서만 달았어도’라는 후회와 좌절된 마음에 울면서 현재의 건물(갈마동 779번지)에 손을 대고 ‘하나님 이런 건물이라도 주셔야 저들이 나의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알고 두려워하겠나이다’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우리는 현금 한 푼 없이, 성도들의 건축헌금 작정도 없이 구입하였다. 그리고 2009년 2월 14일에 이전하여 예배를 드렸다. 하나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시고 완전한 코치이시며 책임자이시다. 교단에 대한 신뢰를 잃은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는 아픔을 겪어야 했지만 하나님께서 목회사역과 함께 헤븐리힐링 사역의 문을 여셨기에 모든 것이 가능했다.

헤븐리힐링사역을 통하여 삶의 질이 변하고 가정이 회복됨은 성도들뿐만 아니라 목회자들에게도 이루어졌다. 강의를 통해 은혜가 회복된 다수의 목사님들이 헤븐리힐링 사역을 함께 섬겨 주고 계신다. 하나님은 말기 암과 같은 육신의 질병은 원하시면 즉시 또는 점차적으로 치료하신다. 많은 이들이 불치병을 치유 받아 섬기는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다는 소식은 사역자로서 위로이고 기쁨이 된다. 치유사역에서 제일 어려운 일은 혼적인 치유이다. 혼적인 질병은 지정의가 있어 오랜 시간이 걸린다. 당장은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됨 같이 성화가 되었나 싶지만 환경과 감정의 변화로 순간에 제자리로 돌아가는 고무줄과 같다. 경험에 의하면 이슬비에 옷이 젖듯이 하나님의 은혜가 임해야 혼적인 질병은 치유되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

천주교와 유교사상의 골수이셨던 어머니를 7년간 모셨다. 예수님 공자 석가모니를 삼대성인이라며 우기시기일쑤셨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집을 나서는 날 향해 ‘우리 목사님 많은 생명 살리고 돌아와요’하시면서 손을 흔들기 시작하셨다. 그때마다 난 어머니를 꼭 안아드리면서 그러겠다고 대답을 하면서 ‘하나님이 엄마를 많이 사랑하신다‘고 했다. 어느 날 갑자기 어머니께서 힘들어하셔서 병원에 2박3일을 입원하셨다. 첫날엔 마태복음 7장 7절로 작사 작곡하셔서 찬송을 하시고, 둘째 날은 ‘내 주를 가까이’ 찬양을 수없이 부르시고 또 부르셨다. 그리고 86세 된 어머니는 다음 날 갓 시집 온 새색시처럼 그렇게 예쁜 모습으로 천국으로 미련 없이 떠나셨다. 혼이 치유되어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된 인생은 죽음 앞에서도 평안하고 행복하다.

난 내가 만난 하나님을 확인하고 싶은 도마의 마음이 불쑥불쑥 올 때 마다 기도했다. 그러다 2006년 4월 아주사 부흥100주년 성회에 참가할 수 있는 은혜의 시간이 주어졌다. 조용기 목사님을 통해 일하시는 놀라운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로 타 교단 새내기 목사로서 여의도순복음교회 국장 목사님들과의 동행이 고리가 되어 하나님은 교회성장연구소 운영 이사와 연구소 MTS 강사로 새로운 사역의 문을 여셨다. 그리고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 교회성장선교회 지도목사로, 교회성장연구소 직속으로 중보기도 군사아카데미도 시작할 수 있었다. 강의와 중보기도, 치유사역이 매주 진행 되었다. 매주 진행되는 치유사역 중에 사랑 없는 권력은 폭력이 되듯이 사랑과 희생 없이 드려지는 끈질긴 기도가 영적인 폭력의 원인임을 알게 되었다. 그 결과 맹목적인 기도를 많이 하는 부모를 둔 자녀가 가출을 하고, 남편이 외도를 하고, 가정이 해체되는 일들을 보게 되었다.

제1회 중보기도군사아카데미를 마치고 헤븐리힐링사역의 디딤돌이 되는 사랑학교(헤븐리힐링 전신)를 개설하였다. 수고함이 없는 물질로 거만하다 넘어진 자들의 억울함(?), 죽는 경험 없이 얻어진 명예로 자기 의가 하늘을 찌르는 이들도 상담하며 기도해주었다. 사랑학교를 시작하면서 사람들이 얼마나 무겁고 답답한 삶을 살고 있는지를 보고 느끼게 되었다. 대전과 서울을 오가며 진행되는 사역은 하나님이 날개를 달아주어 독수리 날개 쳐 올라감같이 일주일 한 두 번씩 오가도 피곤치 않았다. 강의 후 늦은 밤 국민일보 목양실에서 드려지는 중보기도회는 뜨거움 그 자체였다. 사랑하는 성도들은 바깥으로만 도는 목자를 이해해주고 아껴주었다. 외부의 바쁜 사역일정은 국내외를 넘나들며 열어가셨다.

한세대에서 4차원 영성을 강의할 수 있는 기회도 열어주셨다. ‘언제나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리라(고전10:31)’ 다짐하면서 하나님만 바라며 앞만 보고 달렸다. 담임목사가 부재한 상황 속에서 우리교회 성도들은 영적으로 성숙하여 나의 부재 시 사역자들 중심으로 더 열심히 모이고 기도하며 교회를 지켰다. 교회는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기에(히8:2), 바깥일도 하나님의 일이기에 영혼을 깨우고 살리는 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나님은 2022년 도마동 시대를 여셨다. 하나님의 큰 은혜 앞에 큰 방해가 있듯이 우리 교회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아픔을 두 번 겪었다.

헤븐리힐링 레인보우 수련회 참가자들 모습.

성령사역을 하는 성도들이 형통해지자 2018년 9월에 여러 가정이 무리지어 교회를 떠났다. 우리 교회는 가정 중심으로 신앙이 세워져야한다는 모토를 갖고 있기에 가족들이 함께 교회를 섬기고 있다. 그러다보니 가족 한 사람이 흔들리면 전체를 흔들어 뽑혀나간다. ‘절대로 도마동으로 못 들어간다. 하늘영광교회 십자가는 6개월 안에 내려질 것이다’라는 루머를 퍼트려 교회를 혼란에 빠뜨렸다. 이때 남은 성도들과 함께 처절하게 울며 기도에 매달렸다. 그 후 아이에서 어른에 이르기까지 믿음으로 더욱 단단해졌고 기도와 찬양으로 하나가 되어 성도들이 사랑으로 결속되었다.

그럼에도 난 목회의 한계점에 도달해 ‘사랑한 죄밖에 없는데…’ 라는 생각이 자꾸 밀려왔다. 목회를 포기하고 싶었다. 자격 없는 자가 목사의 탈을 쓰고 있는 것 같은 자괴감으로 몸은 망가져갔다.

그러던 어느 주일 아침 설교문을 정리하고 있는데 사무엘학교 찬양소리가 내 마음에 쏟아져 들어왔다. ‘목사님!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

눈물이 쏟아졌다.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이들이 힘을 다해 마음으로 찬양을 하고 있었다. 성전이 은혜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강단에 오르게 하셨고, 그동안 갈등했던 내 마음을 말씀과 함께 풀어놓게 하셨다. 성도들 눈에서도 눈물이 흘러내렸다.

삶을 돌아보면 부모가 자녀를 키운 것 같지만 부모가 자녀와 함께 성장했음을 알게 된다. 목양도 마찬가지이다. 성도들을 목사가 돌본 것 같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커다란 품 안에서 함께 자라가고 있다. 서로가 선한 영향력(믿음, 순종, 성화된 삶)을 끼치고 각자에게 허락된 십자가를 짊어지고 감사함으로 가다보면 매듭은 주님께서 만드시고 새 일을 시작하심을 본다. 감당할 수 없는 문도 여시고 감당케 하시는 하나님은 살아계신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심을 삶으로 증거하는 복된 성도들이 함께함이 복이다.

하나님과의 절대적인 깊은 만남은 내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의지로 23년째 계속되고 있다.

윤민자 목사
국민일보 문서선교 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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