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틀렸다

국민일보

[청사초롱]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틀렸다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입력 2021-12-22 04:03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대학’에 나오는 말이다. 무슨 뜻인지는 다들 알 테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일반론적으로는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일반론은 두루 통하는 이론이면서 예외가 많은 허술한 이론이기도 하다. 유교 사상의 핵심이라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얼마나 허술한 이론인지 지금부터 증명해 보겠다.

요, 순, 우 세 사람은 유학자들이 이상적인 군주로 손꼽는 인물이다. 도덕적으로 나무랄 데 없었고 천하를 태평성대로 만드는 데도 성공했지만 가족은 어쩌지 못했다. 요의 아들 단주는 오만하고 포악하고 음란했다. 요가 아들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않고 순에게 물려준 이유다. 순 역시 가정생활이 평탄치 않았다. 순의 아버지와 계모, 이복동생은 어떻게든 그를 죽이고 재산을 빼앗을 생각뿐이었다. 순의 아들 상균도 변변치 못한 인물이었다. 결국 순은 아들이 아닌 우에게 왕위를 넘겼다. 우는 죄인의 아들이었다. 순이 치수 사업 실패의 책임을 물어 처형한 곤이 바로 우의 아버지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군주의 자격이라면 중국의 3대 성군은 모두 자격 미달이다. 유학자들이 최고의 성인으로 손꼽는 공자도 집안은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 공자 집안은 삼대에 걸쳐 아내를 내쫓았다. 공자부터가 한부모가정 출신이다. 공자의 결혼생활도 원만하지 않았다고 한다. 공자의 아들 백어와 공자의 손자 자사 역시 아내와 갈라섰다. 야담이 아니라 ‘예기’ ‘공자가어’ 등 유교 문헌에 나오는 이야기다. 유학자들이 떠받드는 성인은 하나같이 ‘제가’에 실패했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가 나오는 대학은 공자 제자 증자의 저술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증자의 가정사를 검증해 보자. 증자는 아내가 음식을 제대로 익히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쫓았다. 누군가 너무하지 않냐고 따지자 증자는 말했다. “음식을 익히는 건 사소한 일인데도 내 말대로 하지 않았으니 큰일은 어떻겠는가.” 가부장제의 끝판왕이다. 가장의 권위가 하늘을 찌르던 시절이니까 가능한 이야기다. 어쨌든 ‘수신제가치국평천하’는 이렇게 자기 집안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한 사람들의 주장이다. 사실 대학은 증자의 저술이 아니다. 원래는 ‘예기’라는 책의 한 챕터에 불과했다. 한나라 유학자들이 분서갱유를 모면한 종잇조각을 주워 모으고 자기 생각을 덧붙여 만든 책이다. 특별한 권위를 부여할 만한 책이 아니다. 대학에 권위를 부여한 사람은 송나라 성리학자 주희다. 그는 대학을 예기에서 독립시키고 논어, 맹자, 중용과 함께 성리학의 교과서 사서(四書)로 지정했다.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에서 대학은 필독서였다. 오늘날 한국인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에 익숙한 것도 이 때문이다.

집안을 다스리지 못하면 나라를 다스릴 자격이 없다는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관념이 여전히 공고한 탓인지 대선이 정책 대결 아닌 가족 검증으로 흘러가고 있다. 가족은 가장에게 복종하고 가장은 가족을 책임지는 가부장제의 잔재다. 우리 사회가 얼마나 가부장제에 찌들어 있는지 알 만하다. 이미 성인이 된 자식과 결혼 전 배우자의 행위까지 후보가 책임질 이유는 없어 보인다. 제아무리 가족이라도 독립적 인격체다. 권력을 이용해서 특혜를 주었거나 허물을 덮었다면 이야기가 다르지만, 그렇지 않다면 도의적 책임 이상은 묻기 어렵다. 후보들도 같은 생각이리라. 그들 역시 남의 가족을 들쑤신 전력이 있어 차마 입 밖에 내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성인군자도 가족은 어쩌지 못했다. 가족이 일탈을 저지르지 않도록 감시하고 억압하는 가장이 국가를 책임지면 국민 위에 군림하는 지배자가 될 것이 뻔하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귀결은 제왕적 대통령이다.

장유승(단국대 연구교수·동양학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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