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영원히 슬픈 땅, 우크라이나

국민일보

[내일을 열며] 영원히 슬픈 땅, 우크라이나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입력 2021-12-30 04:03

우크라이나는 유럽에서도 땅 좋고 물 좋기로 유명한 나라다. 비옥한 흑토 대평원은 이탈리아 여배우 소피아 로렌 주연의 영화 ‘해바라기’의 무대가 됐다. 흑해를 끼고 러시아로 이어진 땅. 13세기 몽골에 침략당하기 전까지 키예프공국은 지금의 페테르부르크, 모스크바까지 차지했던 왕국이었다. 키예프는 우크라이나 수도다. 몽골에 짓밟힌 키예프 귀족들이 훨씬 추운 모스크바로 밀려나 세운 왕국이 지금의 러시아 기원이다. 우크라이나인은 슬라브족을 처음 통합해 왕국을 세운 민족으로, 현대 러시아인의 뿌리다.

그런데 왜 우크라이나는 러시아와 앙숙이 됐을까. 두 나라의 역사는 피로 물들어 있다.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에게 우크라이나는 폴란드 전쟁의 희생양에 불과했다. 이 전쟁에서 패하면 우크라이나 땅은 폴란드에 바쳐졌고, 조금이라도 우세해지면 그 땅을 찾아와 러시아제국에 편입시켰다. 아직도 유명한 ‘코사크 기병대’는 “폴란드를 이기면 독립국을 만들어주겠다”는 러시아 황제의 약속을 믿고 나섰던 우크라이나 용병들이다. 물론 그 약속은 영원히 지켜지지 않았다. 코사크 기병대는 1917년 일어난 러시아 공산혁명 때까지 로마노프 왕조의 전위부대였다. 소련 공산당 ‘붉은 군대’에 최후까지 저항했던 반(反)혁명파 백군의 주축이 바로 이들이다.

소련 지도부는 이런 우크라이나를 철저하게 응징했다. 러시아인들을 흑해 연안 크림반도로 대거 유입시켜 우크라이나를 사분오열시킨 것이다. 원전 같은 각종 위험시설을 우크라이나에 밀집시키고, 흑해와 닿은 크림반도에는 대규모 군사기지를 건설했다. 세계 최대·최악의 원전 폭발 사고로 기록돼 있는 체르노빌도 우크라이나 땅이다. 2차 세계대전 당시엔 독일군이 우크라이나를 모스크바 침공의 전초기지로 삼았다. 소련의 탄압이 얼마나 가혹했던지 우크라이나인들이 독일 편에 섰을 정도다.

우크라이나 독립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된 뒤 이뤄졌다. 외세의 침략과 지배로 수난받던 우크라이나인들은 키예프공국 이후 무려 700여년 만에 자주국가를 갖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렵게 세운 독립국 우크라이나의 현실은 아직도 백척간두와도 같다. 지금 우크라이나는 엄청난 숫자의 러시아군에 포위된 상태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명령 한마디면 곧바로 러시아군의 침공이 이뤄질 태세다. 서방 외신들은 러시아 침공은 시간문제라는 보도를 쏟아내고 있다. 이유는 친서방 성향인 우크라이나 정부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움직임 때문이다. 러시아로선 자신들의 코앞으로 대적을 불러들이는 것으로 받아들인다. 우크라이나는 나토에 가입해 동맹국들로부터 군사적 보호를 받지 않는 한 진정한 독립이 불가능하다고 여긴다.

미국 현실주의 외교의 거장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은 “러시아인은 우크라이나인을 외국인으로 여기지 않고, 우크라이나를 외국이라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러시아가 이곳에 자신들의 적(나토)이 발걸음을 들이도록 가만두지 않을 것이란 말이다. 7년 전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령 크림반도를 침공해 합병한 것도 이런 역사적 맥락에서 비롯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러시아인에게 우크라이나는 힘으로 지배해야만 할 대상에 불과했고, 우크라이나인들에게 러시아는 결코 친구가 될 수 없는 원수였다. 같은 말을 쓰고, 같은 혈통을 가졌지만, 러시아는 언제나 착취와 폭압의 근원이었다.

영화 해바라기의 엔딩에는 끝도 없이 펼쳐진 밀밭, 해바라기가 가득한 언덕 위로 떠오른 태양이 나온다. 아름답지만 영원히 슬픈 땅 우크라이나에 언제쯤 평화가 찾아올지 짐작할 수가 없다.

신창호 국제부 선임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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