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고맙습니다”

국민일보

[세상만사] “고맙습니다”

문수정 산업부 차장

입력 2021-12-31 04:02

코로나19 대유행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던 지난해 3월. 서울 번화가 일대를 다니며 소상공인들의 어려움을 취재한 적이 있었다. 인파로 북적이던 거리가 불안으로 움츠러들었던 풍경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의 스산함과 함께 인상 깊게 떠오르는 한마디는 “(취재진과) 이렇게 누구라도 찾아와서 얘기하니 너무 좋다”는 말이었다.

그때는 그랬다. 찾아오는 손님이 너무 없으니 가게 문을 열고 들어와 준 것만으로도 반가워하는 이들이 있었다. 장부를 펼쳐가며 매출이 얼마나 떨어졌는지 보여주기도 하고, 장사한 지 20년도 넘었는데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쓰린 속내를 털어놓는 이들도 있었다.

자신의 어려운 사정을 이야기할 때 차분하게 들어주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함께 이야기 나눌 사람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될 수 있다. 들어주는 사람이 크든 작든 도움을 준다면 더 의미 있는 시간일 테다. 코로나 대유행 초반에 소상공인을 취재할 때면 그런 반가움과 기대감이 감지됐었다.

그 이후로 대략 2년의 시간이 지났다. 코로나 대유행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그동안 소상공인 취재 또한 계속됐다. 대유행의 결정적인 순간마다 소상공인의 이야기를 빼놓고 지나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하거나 완화할 때마다, 새로운 방역 정책이 발표될 때마다, 소상공인 지원 대책이 나올 때마다 현장을 찾아갔다. 취재를 거듭할 때마다 상황은 지난해 3월보다 더 나빠졌다. 돌파구 없는 날들이 계속됐다. 남아 있는 사람 중 적잖은 이들이 버텨내느라 버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현장에서 만난 소상공인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입을 다물었다. 물어봐도 해 줄 얘기가 없다는 말을 종종 들었다. 허탈감이 전해졌다. 분노를 쏟아내는 사람도 꽤 만났다. 힘든 사람에게 찾아가서 얼마나 힘드냐고 묻는 것도, 사실 상대를 화나게 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과 분노를 강하게 표출하는 것은, 방식이 다를 뿐 결국 같은 목소리였다. 한 카페 사장의 말은 그래서 기억에 남았다. “힘들다는 얘기도 하루 이틀이지. 백날 말해봐야 뭐합니까. 달라지는 건 없고, 욕하는 사람만 많습디다.”

기사에 담지는 못했지만 어떻게든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도 있다. 아마도 참고 버티며 살아내고 있는 수많은 소상공인의 마음이 이럴 것이라 짐작된다. “자영업자들이 힘들다고 곡소리만 내는 것 같죠? 아니에요. 힘들긴 힘들죠. 그래도 온종일 힘들어하면서 살 수는 없어요. 가족들이 눈치 보고, 직원들이 불안해하니까요. 그저 속으로 삼키는 거죠. 썩 괜찮은 것처럼, 오늘도 어제처럼, 코로나 같은 게 있기 전처럼 살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그런 건 뉴스에 안 나오더라고요.”

소상공인을 취재하고 그들이 처한 실상을 보도하는 건 어떤 의미가 있었던 걸까. 언론 보도는 늘 부족했다. 역병이 갖는 불가항력의 측면을 감안하더라도 그렇다. 거듭 곱씹어 보니 우리 사회는 그들에게 빚진 마음을 가져야 한다는 데 이르게 된다. 언론이 소상공인의 어려움을 전하는 이유는 거기에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 방역의 최전선에는 의료진을 포함한 방역 인력이 있었다. 하지만 소상공인이 눈물을 삼키며 동참하지 않았다면 상황은 지금보다 훨씬 나빴을 것이다. 정부는 재정으로 보상해야 마땅하고, 이웃들은 그들의 희생에 고마워해야 한다. 이웃의 한 사람으로서, 오늘도 힘내서 하루를 버텨내는 현장의 많은 이들에게 감사를 전한다. 고맙습니다.

문수정 산업부 차장 thursday@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