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사초롱] K콘텐츠와 삶의 지문

국민일보

[청사초롱] K콘텐츠와 삶의 지문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입력 2022-01-05 04:08

바야흐로 K콘텐츠, K크리에이터의 시대다. 작년에 K팝을 필두로 해 K드라마, K무비 등 K컬처는 세계시장에서 고공행진을 거듭했다. K웹툰과 K웹소설도 날아오르기 시작했다. K웹툰이 원작인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은 공개 하루 만에 전 세계 1위를 차지했다. 원작인 책의 판권은 이미 11개국에 팔려나갔다. K웹툰의 경쟁력을 등에 업은 네이버와 카카오가 글로벌 웹소설 플랫폼을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네이버는 세계 최대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카카오는 북미 웹소설·웹툰 전문 플랫폼 래디시와 타파스미디어를 인수해 글로벌 시장 장악에 나섰다.

국내 저작권 에이전트들도 바빠지기 시작했다. K콘텐츠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영미권, 유럽어권, 일본어권, 중국어권 등의 출판사들이 자발적으로 한국의 소설, 에세이, 자기계발, 인문, 그림책 등 다양한 분야의 한국 책에 대한 저작권 계약 문의를 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외국의 출판 콘텐츠를 국내 출판사에 소개하는 데만 열을 올리던 국내 에이전트들은 우리 출판 콘텐츠를 외국에 소개하는 일에도 바빠졌다.

2016년 한강의 ‘채식주의자’가 세계 3대 문학상으로 꼽히는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후에는 한국 문학이 국제문학상 후보에 오르거나, 해외 주요 언론의 주목을 받거나,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는 경우가 점점 늘어나면서 해외 출간도 급증하고 있다. 그림책이나 그래픽 노블의 인기도 대단하다. 2021년에 이지은 작가의 ‘이파라파냐무냐무’가 아동도서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볼로냐 라가치상 코믹-유아 그림책 부문 대상을 수상했다. 한국의 그래픽 노블은 만화계의 오스카상이라 불리는 하비상 최우수 국제도서 부문을 2020년에는 김금숙의 ‘풀’이, 2021년에는 마영신의 ‘엄마들’이 2년 연속으로 수상했다.

K콘텐츠는 팬데믹 상황에서 더욱 위력을 발휘했다. 한국 콘텐츠들이 세계시장에서 경쟁하는 일이 점점 빈번해지고 있다. 이렇듯 세상의 주목을 받는 콘텐츠의 공통적인 특징은 무엇일까. 무엇보다 스토리텔링의 힘이 돋보인다. 어느 시대에나 스토리텔링이 확실해야 사용자의 선택을 받았다. 그러나 쌍방향 소통이 일반화되면서 체험형 콘텐츠가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래서 2010년대 중반에 스토리두잉의 중요성이 부각됐다. 일방적인 소비가 아니라 스토리에 사용자의 참가를 유도하고 체험하게 하는 콘텐츠가 대세가 됐다.

지금은 누구나 현실 세계뿐만 아니라 메타버스라는 가상현실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다. 젊은 세대일수록 메타버스에서 모든 활동을 영위하는 비중이 더욱 높아지고 있다. 상황이 이렇게 바뀌자 기존의 스토리텔링이나 스토리두잉은 스토리리빙, 즉 이야기를 체험하고 살아가는 방식을 추구했다. 현실에서 핍박받는 사람일지라도 가상현실에서는 주인공이 되려는 욕망을 발산하게 마련이다. 그래서 소비자가 모두 주인공처럼 작동하는 콘텐츠가 더욱 각광받기 시작했다.

이제 누구나 자신의 삶인 것처럼 여겨지는 이야기를 즐긴다. 한 칼럼니스트는 모든 사람에게 자기만의 ‘삶의 지문’이 있다고 말하면서 “지금 이 순간의 삶에 가장 충실할 뿐 아니라, 자신이 학습하고 경험하는 모든 것들을 자신의 삶의 콘텐츠로 융합하는 사람은 자기 스토리를 창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금 모든 사람은 스스로 창조자로 변신하고 있다. 따라서 삶의 고유성이 확인되는 콘텐츠가 아니면 세계시민의 선택을 받기가 어렵다. 달리 말하면 한 사람의 마음을 가장 만족시키는 콘텐츠, 좀 범위를 확대하면 가장 한국적인 콘텐츠가 세계에서도 통할 수 있다. 올해에도 그런 콘텐츠가 되도록 많이 쏟아져서 K콘텐츠의 위상이 더욱 높아지기를 기대한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 연구소장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