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대선 결선투표제 어떨까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대선 결선투표제 어떨까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입력 2022-01-06 04:02

지구를 정복하려는 외계 종족 리겔리안의 캉과 코도스 자매는 낚시하던 호머 심슨을 납치해 누가 지도자인지 캐묻는다. 심슨은 민주당의 빌 클린턴 대통령과 공화당의 밥 돌 상원의원이 선거를 치러 다음 대통령이 된다고 대답한다. 외계인 자매는 클린턴과 돌을 납치해 그들의 몸으로 변신한 뒤 침략을 시작한다. 지구인 언어에 익숙하지 않은 침략자들은 연신 망언을 내뱉는다. 클린턴이 된 캉은 “지배자인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잔혹한 명령에 복종하라”고 하고, 돌로 변신한 코도스는 “둘 중에 누굴 찍어도 달라지는 건 없다. 어느 쪽이든 너희 행성은 파멸할 것이다”라고 떠든다. 역대급 비호감 언행에도 그들의 인기는 떨어지지 않는다. 보다 못한 심슨이 용기를 내 둘의 가면을 벗기며 소리친다. “미국인들이여, 이 후보들은 끔찍한 우주 파충류라고요!”

어떻게 됐을까? 미국인들은 이 끔찍한 리겔리안 자매를 물리쳤을까. 천만에. 정체가 탄로 난 캉과 코도스는 오히려 “그래 우린 외계인이다. 근데 어쩔 거야? 여긴 양당 체제라고. 너흰 우리 둘 중 하나를 뽑을 수밖에 없잖아”라며 조롱한다. ‘제3정당에 투표할 거야’라는 소수의 외침은 “맘대로 해봐. 그래 봐야 사표(死票)가 되고 말걸”이라는 외계인의 면박에 쏙 들어가고 만다. 결국 캉이 대통령이 된다. 코도스는 인간을 채찍질하는 행동대장이 된다. 인간은 다른 행성을 겨냥한 광선총을 만드는 노예로 전락한다. 아내가 신세를 한탄하자 심슨의 마지막 대사가 백미인데, “내 탓하지 마. 난 코도스에게 투표했다고!”였다. 심슨조차 양당제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이다.

미국 시사주간 타임지가 20세기 최고의 TV 시리즈로 선정한 ‘심슨 가족’의 ‘공포의 나무집 7(Treehouse of Horror VII)’ 에피소드 내용이다. 외계인이 광선총이나 초능력이 아닌 선거로 지구를 정복하는 이야기라니. 방송된 지 25년도 더 지난 이 발칙한 만화가 요즘 우리 인터넷에서 화제다. ‘양당제의 결말’이라는 제목으로 오르내렸는데, 반응은 대체로 “그때 난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이 될 거라곤 상상도 못했지” “심슨의 기가 막힌 예견, 무릎을 탁 치고 갑니다” 등으로 비슷했다.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다. 대통령을 뽑는 과정이란 으레 가슴이 벅찬 나머지 눈물이 주르륵 흐르는 감동적인 역사 아니던가. 하지만 내 상식은 여지없이 파괴되고 있다. 가족 리스크와 개발 의혹을 시작으로 잇단 실언과 여배우 스캔들, 성 대결 논란을 돌아 피아를 구분할 수 없는 자중지란까지….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선거일까지 두 달 남짓 남았다. ‘찍을 사람이 없다’는 아우성이 빗발친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발표된 한길리서치 여론조사에선 여야 대선 후보 교체가 필요하다는 대답이 56.6%나 나왔다. 이기면 장땡이요 져도 제1야당이니 이처럼 속 편한 선거가 어디 있을까. 후보를 바꾸자는 여론이 절반을 넘어도 양당제의 굴레에 갇힌 ‘미워도 다시 한번’의 차악론과 사표론에 치여 우리 정치는 희망 대신 고통이 됐다.

지난해 말 치러진 칠레 대선에 해법이 있다. 1986년생 가브리엘 보리치는 1차 투표에서 25.82%를 얻어 호세 안토니오 카스트(27.91%)에 밀렸지만, 결선투표에서 55.9%를 득표하며 세계 최연소 대통령이 됐다. 승자독식의 오만한 대통령이 아니라 25% 남짓의 지지율로 세력을 규합해 당선된 겸손한 지도자인 것이다. 비록 만화지만 외계인의 지구 침략을 알고도 막지 못하는 일을 방지하려면 결선투표제 도입이 절실하다. 그것이야말로 도저히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한국 정치를 바꾸고 진짜 다수의 지지를 받는 대통령을 뽑는 방법 아닐까.

김상기 콘텐츠퍼블리싱부장 kitting@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