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건축주 하나님

국민일보

[빛과 소금] 건축주 하나님

서윤경 종교부 차장

입력 2022-01-08 04:08

‘빈자의 미학’을 건축으로 이야기하는 서울시 초대 총괄건축가 승효상 이로재 대표는 저서 ‘보이지 않는 건축 움직이는 도시’에서 건축은 부동산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한국과 프랑스가 건축을 대하는 방식을 소개한다. 일단 소관 부처부터 다르다. 한국은 국토교통부(국토부), 프랑스는 문화부다. 한국의 건축법과 프랑스의 건축법에서 말하는 건축의 정의도 다르다.

1977년 프랑스에서 제정한 건축법은 “건축은 문화의 표현이다. 건축적 창조성, 건물의 품격, 주변 환경과의 조화, 자연적 도시적 경관 및 건축유산의 존중은 공공적 관심사”라고 건축을 설명한다. 우리 건축법에선 건축물에 대해 “건축이란 건축물을 신축·증축 개축·재축하거나 건축물을 이전하는 것을 말한다”고 정의했다. 승 대표는 이를 두고 “허무하다”고 표현했다.

2016년 11월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승 대표를 만났을 때 건넨 기자의 고민 섞인 인사도 같은 맥락에서 나왔다. 당시 승 대표는 국토부 출입기자들이 참석한 간담회에서 용산 미군기지의 ‘용산공원 조성계획 추진 상황’을 설명하기 위해 공동설계자라는 타이틀로 참석했다. 공식 일정이 끝나고 승 대표에게 개인적으로 인사를 건네며 토로하듯 한마디를 던졌다. “혼란스러워요, 선생님.”

혼란의 이유는 이랬다. 승 대표를 처음 만난 2년 전 기자는 문화부에서 미술을 담당하고 있었다. 건축은 문화적 창조 행위니 ‘부동산’ 인식은 버리라는 식의 내용을 기사에 담을 때였다. 예술의 관점에서 바라보던 그 건축을 2년 뒤 국토부에 와서 자산 가치의 부동산으로 보고 기사를 쓰고 있었다. 승 대표는 기자의 말에 설명 대신 자신의 작업실이 있는 “대학로로 오라”고 했다. 그리고 5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승 대표 작업실을 찾았다. 지난해 교회 건축 순례를 기획하는 과정에서 순례길 동행을 요청하면서다.

교회 건축을 돌아보기로 마음먹게 한 건 코로나19다. 정부의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로 교회 문은 닫혔고 2년 가까이 온전한 대면 예배는 드릴 수 없게 됐다. 그사이 교회를 대체하는 공간들이 온라인에 생겼다. 유튜브로 예배하고 화상회의 플랫폼 줌(ZOOM)에서 소그룹 모임을 이어갔다. 최근엔 메타버스로 교회의 영역이 확장됐다. 교회에 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이들에게 대신 교회를 보여주고 싶었다. 더구나 비어가는 교회가 어떤 기능을 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기도 했다. 코로나 이전부터 저출산 등의 이유로 일부 교회에선 주일학교와 청년부 예배가 사라지고 있었다. 한국교회가 텅텅 빈 유럽의 교회처럼 될 수 있다는 위기의 목소리도 나왔다.

“터무니 있는 건축을 통해 터무니 있는 삶이 생겨난다”는 승 대표의 이야기는 교회 건축이라는 물적 대상의 가치를 생각하게 했다. 교회는 인간과 절대자인 하나님 사이의 관계를 규정짓는 동시에 사람 이야기를 담기 때문이다. 그래서 순례를 한국의 대표적 근현대 건축물인 경동교회와 사적 제256호 정동제일교회, 사적 제424호 강화대성당, 서울시유형문화재 제35호 서울대성당 등 역사적 교회 건축물로 시작했다. 단순히 오래돼서가 아니라 신앙 안에서 한국인의 삶과 역사를 담고 있어서다.

순례길에 동행한 목회자와 건축가들은 교회 공간을 건축 이상의 가치로 제시한다. 경희대 이은석 건축학과 교수는 광장을 만들어 공공적 기능과 복음의 개방성을 표현한 새문안교회를 사례로 들며 공공교회를 말했다. 승 대표는 비어 있는 유럽의 교회가 여전히 안식을 주는 공간으로 남아 있다며 한국교회의 역할을 설명했다. 교회건축 이론가로 유명한 성공회대 이정구 전 총장은 천편일률적인 교회 형태보다 교회가 추구하는 철학을 공간에 어떻게 담을지 고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런 의미에서 교회건축 순례의 또 다른 제목 ‘건축주 하나님’은 마침맞다. 이유는 모더니즘 건축의 마지막 건축가로 알려진 아이엠페이가 설명해 준다. “좋은 건축은 좋은 건축주만이 만들 수 있다.”

서윤경 종교부 차장 y27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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