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여성가족부 폐지 앞서 역할 재정립 해야

국민일보

[사설] 여성가족부 폐지 앞서 역할 재정립 해야

입력 2022-01-10 04:03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9일 서울 여의도 당사로 들어가고 있다(왼쪽). 오른쪽 사진은 윤 후보가 페이스북에 올린 여성부 폐지 공약. 연합뉴스·윤 후보 페이스북 캡처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페이스북에 올린 ‘여성가족부 폐지’라는 7글자의 공약에 젠더 갈등이 선거의 핵심 이슈로 다시 떠올랐다. 이틀 만에 댓글이 1만개가 넘었고, 온라인 커뮤니티마다 격한 반응이 쏟아지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 논쟁은 감정적이고 대증적인 반응에 머물고 있다. 윤 후보를 비롯한 대선 후보들이 합리적 토론에 근거한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지 않은 채 표를 쫓는 자극적 발언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소통과 공감 없는 일방통행식 폐지 주장은 갈등만 부추길 뿐이다.

2001년 여성부로 출범한 여가부는 남성우월주위가 만연했던 우리 사회에서 절대적 약자인 여성에게 가해진 차별을 개선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5인 이상 사업체에서 여성 사장은 3%를 넘지 못했고, 전문대졸 이상의 고학력 여성 취업률조차 20%를 밑돌았다. 여성은 고용·승진에서 노골적 차별을 받았고, 임신·출산에 따른 퇴직을 당연하게 여겼다. 불합리한 법·제도와 문화를 조금씩 바꿔 양성평등이 우리 사회의 주요 가치로 인정받기까지 여가부의 노력은 적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양성평등은 이뤄지지 않았다. 많은 여성이 아직 온갖 폭력에 노출돼 있고, 사회적 차별도 엄연히 남아있다. 젠더 갈등이 매우 심각하므로 논란거리인 여가부를 일단 폐지하고 본다는 단순한 논리로는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폐지론이 줄곧 나오는 데는 여가부의 책임도 크다. 무엇보다 여성 우대 정책에만 치우쳤다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사회적 지위가 낮고, 경제적으로 곤궁한 여성을 돌보기보다 기득권을 지키는데 급급하지 않았는지 반성해야 한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사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와 윤미향 의원의 갈등 등에서 피해자의 권익 옹호에 소극적이었던 잘못도 있다. 이런 부정적 이미지가 정쟁의 빌미를 줬다. 지금 20대의 젠더 갈등은 매우 심각하다. 여가부가 ‘여성 보호주의’에 빠져 있거나, 정치인들이 표를 얻는 방편으로 이용할 만큼 한가한 상황이 아니다. 이번 대선은 여가부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립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