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 맞고 출전… 연아언니 말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

국민일보

“진통제 맞고 출전… 연아언니 말대로 포기하지 않을 것”

[인터뷰] 피겨 국대선발전 2위… 극적으로 베이징 가는 김예림

입력 2022-01-12 04:05
김예림이 9일 의정부실내빙상장에서 2022 베이징 동계올림픽 국가대표 2차 선발전을 겸해 열린 제76회 전국남녀 피겨스케이팅 종합선수권대회에서 오페라 투란도트에 맞춰 프리스케이팅 연기를 펼치던 중 공중을 향해 뛰어오르고 있다. 연합뉴스

“이제 다리 뻗고 잘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더라고요. 하하.”

상상만 하던 무대에서 뛰는 게 결정된 날, 피겨스케이팅 선수 김예림(18)은 밤새 잠을 설쳤다. 초등학교 입학식도 하기 전에 TV 화면에서 푸른 드레스를 입은 은반 위 김연아의 모습을 보고 꿈꾸기 시작한 무대다.

“너무 큰일이 끝나서 그런지 잠이 오지 않더라고요. 너무 다행이란 생각이 가장 컸어요.”

김예림은 9일 국가대표 2차 선발전에서 유영과 함께 다음 달 베이징 동계올림픽 여자 피겨 싱글 한국 대표 자격을 획득했다. 유영은 1차 선발전에서 워낙 크게 앞서나가 출전권 획득이 유력했지만, 다른 한 자리는 유독 경쟁이 치열했다. 쟁쟁한 ‘김연아 키드’ 중에 베이징행 티켓을 따낸 김예림의 성취는 그래서 더 값지다. 국민일보는 대회 이틀 뒤인 11일 그와 전화로 인터뷰했다.

선발전 마지막 날 열린 프리스케이팅 경기에서 김예림은 부상에도 불구하고 올 시즌 처음으로 실수 없는 연기를 펼쳤다. 오페라 투란도트의 웅장한 선율에 맞춰 연기를 끝낸 그는 공중을 향해 오른손을 높이 뻗은 마지막 포즈 뒤 양손을 불끈 쥐었다. 인터뷰에 나선 그의 눈엔 물기가 남아있었다. 또래와 비교해도 감정표현이 큰 편이 아닌 그가 얼마나 감정이 북받쳤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하마터면 그는 마지막 고비에서 쓰러질 뻔했다. “대회 일주일 전 훈련하려고 밖에서 워밍업을 할 때였어요. 별다른 동작을 하지도 않았는데 통증을 느꼈죠. 통증을 조절하고 치료도 해서 시합하는 주에 이르러선 거의 회복됐다고 생각했는데 마지막 공식연습을 하던 지난 6일 런스루(음악에 맞춘 최종연습) 중에 갑자기 통증이 도졌어요.” 그때만 해도 별일 아닌 줄만 알았다.

“이튿날 연습에 들어가니 숨쉬기 힘들 정도로 척추 쪽에 통증이 왔어요. 선수생활하면서 처음으로 공식훈련 도중에 관두고 나왔어요. 아무것도 할 수 없었거든요. 통증이 심해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올림픽 도전을) 못할 수 있겠다 싶으니 너무 무서웠죠.”

그는 프리스케이팅 직전까지 병원에서 진통제를 잔뜩 맞고 경기에 임했다. 경기 뒤 울컥한 건 그런 위기를 버텨낸 스스로가 대견해서였다.

그가 버틸 수 있었던 건 누가 뭐라 해도 노력 덕이다. “연습에선 잘했는데 시합에서는 롱프로그램(프리스케이팅)을 완벽하게 보여드리질 못했다. 스스로 아쉬운 게 컸다”고 했다. 지난달 1차 선발전을 종합 2위로 끝낸 뒤 외려 연습에 더욱 몰두했다. “‘이대로면 올림픽 가겠다’는 주변 분위기에 휩쓸리고 싶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흔들리거나 놓치는 게 없도록 일부러 더 예민하게 받아들였다”고 했다.

그는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의 김연아를 보고 올림픽을 꿈꾸기 시작했다. 그에게 김연아는 아직도 말 거는 것조차 가슴 떨리는 우상이다. 김예림은 “2차 선발전이 끝나고 연아 언니가 먼저 연락을 주셨다. ‘허리 부상이 있다고 들었는데도 너무 잘했다’는 얘길 듣고 ‘아 알고 계셨구나’ 싶었다. 관심 갖고 봐주셨단 생각에 너무 좋았다”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그는 “연아 언니가 다른 좋은 시합도 많았지만 올림픽에서 굉장히 좋은 경기를 하셨다고 생각한다”며 “저와 또 다른 차원의, 굉장히 큰 무게감과 부담이 있었을 텐데 올림픽이란 큰 무대에서 어떻게 그렇게 하실 수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다”고 했다. 김연아에게 남기고픈 말을 묻자 쑥스럽다는 듯 “열심히 준비했으니까 보시기에 많이 부족하겠지만… 관심 갖고 응원해주셨으면 좋겠다”며 웃었다.

그가 밴쿠버의 김연아를 보고 인생이 바뀌었듯, 베이징에서 김예림 역시 수많은 피겨 꿈나무의 우상이 될 수 있다. 그는 “예전에 연아 언니가 ‘힘들 수 있고 포기하고 싶은 때가 있을 것이다. 울어도 되지만 포기하지만 말라’고 했는데 이제 좀 이해가 된다”며 “힘든 일이 없을 수 없다. 울고 견디는 대신 포기하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말을 해주고 싶다”고 했다.

김예림은 이날까지 촬영 등 다른 스케줄을 마치고 이후에는 치료에 전념할 예정이다. 다행히 치료에 많은 시간이 걸리는 부상은 아니라 다음 주 에스토니아에서 열리는 사대륙선수권대회에는 출전하려 한다.

팬들에게 남길 말을 물었다. “많은 분이 지켜보실 걸로 안다. 처음 보시는 분도 있을 테니 좋은 인상을 남기고 싶다”며 “여태 응원해준 분들에게도 보답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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