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도낏자루가 썩기 전에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도낏자루가 썩기 전에

윤소정 패션마케터

입력 2022-01-17 04:05

작년 11월 사회적 거리두기가 잠시 완화됐을 때 6살 아이의 유치원 친구 생일 파티가 인근 키즈카페에서 열렸다. 한 해가 다 가도록 같은 반 친구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지내다 반가운 마음으로 달려가니 제법 많은 아이와 엄마들이 같은 마음으로 모여 있었다. 파티 장소에 도착하면서부터 소리를 지르며 4시간 가까이 신나게 노는 아이들을 보면서 평범한 일상이 이런 큰 행복이었나 싶었다. 유치원 선생님과의 통화에서 코로나로 인해 아이들이 멀찍이 떨어진 책상에서 따로 공부하고, 점심도 앉은 자리에서 각자 조용히 먹게 해 서로 놀 기회가 적었다며 모두 정말 신이 났겠다는 얘기를 들었다. 덧붙여 우리 아이가 친구들과 두루 친하고 새로 온 친구에게 유치원 생활을 친절히 안내해주는 멋진 아이라는 칭찬까지 들어 한껏 흐뭇했다.

겨우 두 달이 흘렀을 뿐인데 아이가 유치원에 가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물어보니 새로 왔다는 여자 친구에게 유치원 생활을 안내해준 정도를 넘어 푹 빠졌었던 모양이다. 다른 엄마에게서 우리 아이가 새로 온 친구를 많이 좋아하더라는 얘기를 들었을 때 그냥 웃어넘겼는데 정도가 심했나 보다. 그 친구가 유치원에 며칠째 안 나오는데, 이제 아무도 자기와 놀아주지 않는다는 게 유치원 보이콧의 이유였다.

지난해 유난히 바쁜 한 해를 보내면서 조금의 시간도 내놓지 않는 남편에게 조용한 분노가 쌓였었다.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혼자 감당하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가슴속이 차가워졌다. 다행히 올해는 근무지도 가까워지고 주말을 함께 보내면서 언 마음이 녹았지만 상황이 더 길어졌더라면 좋지 않았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 친구가 두 아이를 키우는 동안 자기 일에만 빠져 있던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돌아보니 큰 벽이 돼 있더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무언가에 몰두하는 동안 시들어가고 있는 사람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보며, 아이가 친구들과 너무 많이 멀어지지 않았기를 바란다.

윤소정 패션마케터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