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리사니] 2056년이라는 미래

국민일보

[가리사니] 2056년이라는 미래

심희정 경제부 기자

입력 2022-01-17 04:07

2056년 2월. 올 것 같지 않은 아주 먼 이날은 나의 국민연금 수급이 시작되는 때다. 현재 62세인 국민연금 수급 시작 연령은 2033년부터 65세로 상향된다. 그로부터 23년 뒤인 2056년에는 68세나 70세로 높아질지 모를 일이다. 물론 국민연금을 받는다는 전제하의 얘기다.

얼마 전 90년대생이라면 클릭하지 않을 수 없는 뉴스가 포털사이트를 가득 채웠다. 지금의 국민연금 체계를 유지하면 90년생부터 국민연금을 한 푼도 못 받게 된다는 내용이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민연금 재정수지는 2039년 적자로 전환되고, 적립금은 2055년 소진된다. 계산대로라면 2056년 2월은 이미 국민연금 적립금이 바닥이 난 지 1년이 지난 뒤다.

국민연금이 다 떨어진다는 2055년은 영화 ‘돈 룩 업(Don’t Look Up)’의 혜성 충돌만큼 까마득하다(영화의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천문학과 대학원생 케이트 디비아스키와 담당 교수 랜들 민디 박사는 직경 6~9㎞ 크기 혜성이 지구로 다가오고 있고, 6개월 14일 뒤 충돌한다는 계산까지 해낸다. 1.5㎞ 높이의 쓰나미가 덮치고, 일본 히로시마 원자폭탄의 10억배에 달하는 위력으로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고 세상에 외친다. 그런데 심각한 건 이들뿐이다.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대통령은 혜성 충돌엔 관심도 없고, 언론은 유명 연예인의 이별과 재결합을 생중계하느라 바쁘다.

대통령이 중간선거에서 질 위기에 처하자 혜성은 정치적 도구로 활용되고, 그제야 전 세계 이슈로 떠오른다. 혜성의 궤도를 변경할 핵 장착 위성을 띄우면서 지구 멸망은 막았다 싶을 때, 하늘로 향하던 위성이 불현듯 돌아온다. 혜성에 어마어마한 가치의 희귀광물이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다. 혜성을 폭파해 조각낸 다음 지구에 안전하게 떨어지게 하겠다는 프로젝트는 결국 실패한다. 그리고 거대한 혜성이 지구로 향한다. ‘설마 정말 그렇게 되겠어?’ 그 순간 지구는 멸망한다.

국민연금에 대한 우려는 ‘돈 룩 업’의 혜성 충돌 경고와 별반 차이가 없어 보인다. 빠른 고령화 속도와 적립금 부족으로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이란 경고는 꽤 오래전부터 있어 왔다. 그런데도 연금 개혁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문재인정부 들어 국민연금 개혁 논의는 거의 없었다. 정부 고위공무원마저 “국민연금 개혁이 시급한 건 알고 있지만 추진 동력이 없었다”고 말하는 처지다.

차기 정부에 기대를 걸기에도 전망은 어둡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국민적 합의를 끌어내기 위해 연금개혁위원회 같은 논의 기구를 만들어 가능한 방안을 만들겠다”고 얼버무렸고,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는 “초당적인 연금개혁위원회를 만들고, 국민의 대합의를 이끌어 내야 한다”고 이 후보와 똑같은 소리를 했다. 뭘 어떻게 하겠다는 건지 알맹이가 없다. 그나마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2088년이 되면 국민연금의 누적 적자가 무려 1경7000조원이 된다. 이걸 그대로 둔다는 건 범죄 행위”라며 “일본처럼 모든 연금을 통일하자”고 구체적 방안을 말했다.

국민연금 개혁 필요성에도 불구하고 우물쭈물하는 양당 대선 주자의 말은 혜성이 떨어지는 하늘을 올려다보지 말라는 ‘돈 룩 업’과 뭐가 다른가. 앞으로 다가올 일을 외면하면서 당장의 현금 살포 공약에만 혈안이 돼 있는 모습은 현실이 더 영화 같다는 뻔한 말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자영업자나 소상공인 손실 보상에 간편하게 ‘50조원, 100조원’을 투입하면 위기가 해소된다는 대선 주자들의 말은 혜성에 140조 달러 가치의 희귀 광물이 있으니 그대로 지구로 오게 두자는 말보다 더 허무맹랑하다. 국가채무는 올해 1064조원이 넘을 전망이다. 혜성 충돌 같은 위기를 맨몸으로 맞게 될 청년들에게 대선 주자들은 탈모약 건강보험 적용이나 여성가족부 폐지를 말한다. 30년 뒤는 보지 말라고, 두 달 뒤 대통령이 되겠다는 이들이 목청껏 소리치고 있다.

심희정 경제부 기자 simcit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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