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 산업 구조조정, 경제 논리냐 정치 논리냐

국민일보

[국민논단] 산업 구조조정, 경제 논리냐 정치 논리냐

양승훈(경남대 교수·사회학과)

입력 2022-01-17 04:04

현대중공업의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유럽연합(EU)의 기업결합심사에서 불허됐다. 합병할 경우 LNG 선박 점유율이 60%를 넘겨 독점이라는 것이 EU의 판단 근거다. 판단에 논란은 있지만 산업은행은 다른 민간 인수자를 찾는 ‘플랜B’를 마련하겠다고 한다. 현대중공업이 처음은 아니었다. 2008년 한화그룹도 대우조선을 인수할 뻔했지만 글로벌 금융 위기 영향으로 포기한 적이 있다. 대선 국면이라 이후 일정한 정책 기조 변화를 겪게 될 수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인수자 찾기는 당분간 주춤할 수밖에 없다. 조선업이 호황 초입이라도 297% 부채비율에 적자가 나고 있는 기업에 쉽게 손이 나가는 상황을 기대하기 어렵다. 저가 수주 등 시장 교란과 과당 경쟁을 막고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문재인정부 산업 구조조정의 마무리가 순탄치 않다.

산업 구조조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고 매번 순탄하지도 않았다. 1971년 박정희 정권은 ‘기업합리화위원회’를 통해 74개 부실기업의 새 주인을 찾으려 했으나 실패가 다반사였고, 원소유주가 다시 인수하는 경우도 있었다. 80년대 전두환 정권은 중화학공업화로 인한 방만한 투자를 정비하겠다고 산업 합리화에 팔을 걷어붙였지만, 대우는 어깃장을 놓고 버텨서 대우자동차를 살려냈다. 99년 대우그룹 해체 과정에서 대우조선이 워크아웃 대상이 돼 채권단 관리를 받았고 그 와중 산업은행이 출자전환을 통해 대우조선 대주주가 된 것이 20여년 전의 일인데, 지금까지 대우조선은 제 주인을 찾지 못하고 있다.

수출시장에서 수많은 외화를 벌어주고 일자리를 만들어냈던 것이 조선·자동차·석유화학·기계산업 등 중화학공업화로 탄생한 제조업이다. 이제 50년이 지나 기술 경쟁력이나 재무 구조에 큰 문제가 발생할 때마다 필요한 구조조정을 진행하는 것은 ‘MADE IN KOREA’의 가치를 위해 불가피하다. 그런데 효과적인 구조조정을 위해서라면 두 가지를 검토해야 한다.

먼저 산업은행발 구조조정의 효과성이다. 산은의 구조조정은 빠르게 부실을 정리하고 제 짝을 찾아주는 데 목적이 있다. 그러나 인수 대상 기업 관점에서는 은행원들이 ‘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상태에서 ‘관리단’ 파견을 통해 경영진단을 한 후 무리한 자구안으로 인적·물적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것으로 느껴질 수 있다. 2000년대 이후 신자유주의 경향은 무엇이든 다운사이징을 요구하는 것이니 그 과정에서 핵심 기술과 인재 유출이 발생하기 십상이다. 부실을 떨어내려다 핵심 경쟁력까지 떨어내기 일쑤다. 조직 내부 갈등은 고조된다. 매각이 잘 되면 다행이지만 지지부진했던 경우가 다반사다. 서별관 회의나 고위 관료들의 ‘그립’과 정치적 개입이 필요해진다. 사실 어느 나라든 대기업 인수·합병은 정치적 틀을 벗어나기 어렵다.

둘째는 민주화와 지방자치제 이후의 복잡해진 이해관계 조정이다. 2019년 인수·합병 선언 이후에 경상남도청부터 거제도 곳곳까지 인수·합병 반대 플래카드가 걸렸고, 노동조합은 EU까지 가서 인수·합병 반대 목소리를 전했다. 고용 보장과 기자재 업체의 생존 문제가 쟁점이었다. 매각 대신 국유화를 말하는 진보주의자들도 있다. 그런데 매각이 안 되고 호황과 불황의 사이클을 오가는 조선산업에서 불황 사이클이 오고 다시 공적자금을 투입해야 할 상황이 오면 그때는 어떻게 국민 동의를 얻을 것인가. 그 와중 기초단체도 매각 반대로 의견이 기울었다. 전국적 여론과 지역적 여론이 첨예하게 갈린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효과적인 구조조정 과정에선 중앙정부와 채권단, 인수·합병 주체만이 아닌 지역의 이해당사자들까지 고려해야 한다.

2017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발간한 ‘주력산업 구조조정과 고도화를 위한 사례연구’ 보고서는 산업 구조조정을 위해선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강조한다. 문제는 궁극적으로 사회적 합의에 포함돼야 할 다양한 주체들이 내게 될 다양한 입장을 효과적으로 조율해낼 수 있는 정치적 역량이다. 경제가 쟁점이 되면 늘 정치 논리가 작동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많지만, 역설적으로 이럴 때야말로 필요한 것은 경제 논리보다 노련하고 유능한 ‘협상의 정치’다. 대선 주자들이 공약으로 말하는 산업 대전환이나 혁신성장은 더 많은 구조조정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혁신과 일자리 확보를 위해선 다양한 이해당사자들의 이익을 찍어 누르는 대신, 효과적으로 설득하고 협상해서 조정할 수 있는 유능한 정치 지도자를 찾아야 한다.

양승훈(경남대 교수·사회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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