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너희도 가려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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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설교] 너희도 가려느냐

요한복음 6장 26~35절, 66~69절

입력 2022-01-18 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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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상 권력은 다분히 개인보다는 조직체를 통해 더욱 견고해졌습니다. 한때 정치는 개인의 능력보다는 조직의 힘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어느덧 조금은 세상 이치란 것을 깨닫게 되니 정치뿐만이 아니라 심지어 교회 공동체에 이르기까지 조직 체계를 가진 어느 분야나 이는 마찬가지 원리였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어디를 가든 출세를 바라는 이 나라 사람들은 내 사람, 내 편을 만들고, 찾고, 연줄을 만들기에 급급하고, 자신의 뒤를 봐줄, 소위 ‘빽’을 만들기 위해 온갖 지연, 학연, 혈연을 가져다 대고 따지게 되더라는 겁니다. 세상이 주는 부와 명예와 권세를 얻기 위해서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다르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야속하게도 ‘부’와 ‘명예’와 ‘권세’, ‘기득권’을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대신 ‘십자가’, 재물에 손해를 보고, 명예를 잃게 되며, 권세를 잃게 되는 십자가를 약속하십니다. 왜 하필 십자가일까요. 예수님이 주고자 하신 것은 시간이 지나면 썩고, 없어져서, 이 땅에 놓고 가야 하는 세상의 것이 아닌 ‘영생, 영원한 생명’이었기 때문입니다.(요 6:27)

인간이 세상에서 그토록 얻고자 애를 쓰는 부와 명예와 권세는 결국 썩을 양식입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옷을 입어도 인간의 육신은 결국 늙고 병들어 죽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썩어버릴 것들을 약속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 나라의 일을 이루기 위해 부와 명예와 권세가 필요하면 주님께서 주실 수 있으시지만, 그것을 이 짧은 나그네 인생 같은 삶의 최종 목표로 삼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보면, 전날 ‘오병이어’ 사건을 통해 자신들이 원한 떡을 예수님께 얻어먹은 사람들과 그 소문을 들은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몰려듭니다. 그들은 사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이 또 주실 떡과 그것을 먹을 것을 기대하며 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이 원하는 떡을 주지 않고 거절하십니다. 예수님은 한 번 먹으면 다시 배고픈 떡 대신에 영생의 떡이 되는 예수님 자신을 주겠다고 말씀하십니다.(요 6:35) 이 말씀을 들은 군중들은 실망합니다. 그렇게 모두 흩어지고 예수님의 제자들만 남았습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일이 잘 안 풀리고, 어려움이 연속될 때 자신이 무언가 잘못한 것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자녀들에게 어려움이 닥치면 ‘내 죄 때문인가?’ 혹은 ‘내가 죄가 커서’라고 반응하는 부모님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물질적인 일이든 육신의 일이든, 자신이 임하게 된 고난과 역경 가운데 신앙을 버리지 않고, 주님을 붙들고 믿음으로 잘 견디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축복 가운데 있다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미워하는 사람이 아닌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이들에게 십자가를 주십니다. 세상에서 육신의 것을 누리는 축복보다 더 큰 축복은 주님을 위해, 주님과 함께 십자가를 지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 중에 가장 큰 능력은 십자가를 지는 능력입니다. 세상을 이기고 넘어서는 능력은 십자가에서 나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는 주님의 질문에 마지막까지 남은 제자들이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우리가 주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신 줄 믿고 알았사옵나이다’(68절)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예수님 주신 약속으로, 생명의 떡으로 살아가기를 사모하고 다짐하는 모든 성도의 삶에 제자들이 보여준 분명한 믿음과 응답이 함께 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장종국 슬로바키아 질리나한인교회 목사

◇슬로바키아 질리나한인교회는 2004년 슬로바키아 소도시인 질리나에서 평신도를 중심으로 시작된 한인 디아스포라 예배 공동체입니다. 슬로바키아 현지 형제 교단 소속 초교파 교회이며, 현재 약 40명의 한인과 현지인 가족들이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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