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동 칼럼] 짝사랑도 이쯤 되면 스토킹 아닌가

국민일보

[박현동 칼럼] 짝사랑도 이쯤 되면 스토킹 아닌가

입력 2022-01-18 04:20

북한의 잇단 미사일 도발에도
점잖고 한가한 정부 대응 수위
정치권은 저질 싸움질에 빠져

종전선언 이해되나 한계 분명
평화는 말로만 보장되지 않아
위험의 과장만큼 축소도 문제

국민들은 '착한' 대통령보다
공포로부터 자유롭게 해주는
'강하고 당당한' 대통령 원해

세상에 납득할 수 없는 일들은 많다. 그중에서도 북한 미사일 도발에 대한 정부의 태도와 대응은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북한이 17일 미사일을 또 쐈다. 올 들어 네 번째다. 지난 5일과 11일엔 자강도 일대에서, 14일엔 평북 의주 철도차량에서, 이번엔 평양 순안공항에서 발사했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 쏠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짧게는 380㎞, 길게는 1000㎞까지 날아갔다. 극초음속으로, 기술 고도화까지 이뤘다. 평양~서울이 195㎞, 자강도~부산이 680㎞ 정도니 2~3분이면 남쪽 끝까지 닿는다. 남한 전역을 타격 범위에 둘 정도로 가공할 위력이다.

미사일에 핵탄두를 장착하면 핵미사일이 된다. 탄두가 동해로 향했으니 망정이지 만일 부산으로 향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그런데 청와대와 정부의 대응은 뜨뜻미지근하고 점잖다. 정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긴급소집한 후 ‘매우 유감’이라고 밝혔다. 지난 11일과 14일엔 ‘강한 유감’이라고 표명했다. 지난 5일의 ‘우려’에 비해선 강도를 높인 측면이 있다. 그러면서도 종전선언의 필요성이 더 커졌다고 주장했다. 많은 국민은 ‘도발’로 인식한다. 국민과 정부의 인식차가 너무 크다. 종전선언이 평화로 가는 수단이라고 해도 이 순간에 굳이 해야 할 말이었을까. 정부 말대로 종전선언은 평화와 통일의 길목이다. 말인즉슨 옳다. 하지만 치명적 위험성을 감안하면 그저 한가롭다. 위험을 과장하는 것만큼이나 축소하는 것도 문제다.

엉뚱하게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정쟁으로 비화됐다.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후보가 선제타격을 언급하자, 여권에서는 ‘전쟁광’ ‘불장난’ ‘멸국(滅國)’이라며 맹비난했다. 유력 후보로서 선제타격을 주장한 것은 적절하지 않은 측면이 있다. 그렇다고 “전쟁하자는 것이냐”며 드잡이하는 것도 볼썽사납다. 국가안보에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북한이 원인 제공을 했는데도 싸움질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벌이는 이 형국은 저질 코미디다. 이런 수준 이하의 싸움질을 하는 두 당이 국가 경영에 나서겠다고 하니 영 미덥지 않다.

그 누구도 전쟁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평화의 당위를 부인할 수 없는 근거다. 종전선언 그 자체를 시비 걸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당위로서의 평화와 현실로서의 평화엔 간극이 너무 크다는 점을 정부는 애써 피하려 한다. 혹자들은 북한 입장에서 바라보며 이해해야 한다고 짐짓 유식하게 말한다. 이른바 내재적 관점인데 이론적으로 타당한 측면이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한계가 많다. 평화는 말로 오지 않는다. 2차 세계대전 등 역사가 증명한다. 국민들은 상황에 따라 때론 포용적으로, 때론 단호하게 대응하길 바란다.

세상사가 그렇듯이 부당한 요구를 계속 용인하면 권리인 양 착각한다. 떼쓴다고 받아주면 그 떼는 수단이 되고 결국은 권한이 된다. 북한이 딱 그래 왔다. 협박은 애교 수준이고, 걸핏하면 죽일 듯 덤벼든다. 심지어 ‘삶은 소대가리’ ‘겁먹은 개’ ‘특등 머저리’ ‘떼떼’ 등 입에 담기조차 거북한 욕지거리를 내뱉는다. 그런데도 정부 대응은 기껏해야 유감 표시다. 문재인 대통령을 지지하든 않든 국민으로선 자존심 상하고 모멸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문 대통령의 북한 짝사랑은 어제오늘이 아니다. 대통령은 2018년 5월 26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김정은과 두 번째 정상회담을 가진 뒤 기자회견에선 “김정은 위원장은 한반도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피력했다”고 전했다. 같은 해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직후에도 대국민 보고를 통해 “(김정은이) 영변 핵 시설의 영구적 폐기를 포함한 추가적 비핵화 조치를 계속 취해나갈 용의가 있음을 표명했다”고 했다. 실제 상황은 어땠는가. 북한 정권은 문 대통령 취임 나흘 만인 2017년 5월 14일부터 지금까지 30여 차례 미사일 시험을 했다. 이명박정부(12차례), 박근혜정부(5차례)에 비해 크게 늘어났다. 종전선언을 위한 대통령의 노력에 대한 대가라고 하기엔 너무 고약하다. 이렇듯 김정은은 지난 5년간 문 대통령을 속였고, 이 과정에서 국민들의 공포심은 커졌다. 이러니 짝사랑이 아니라 스토킹이라는 말이 나오는 게 아닌가. 헌법을 거론할 필요조차 없이 대통령의 책무는 모름지기 유무형의 공포로부터 국민을 자유롭게 하는 것 아닌가. ‘착한’ 대통령도 좋다. 하지만 먼저 ‘믿음 주는’ 대통령이어야 한다.

박현동 편집인 hd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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