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캠핑과 노숙 사이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캠핑과 노숙 사이

윤소정 패션마케터

입력 2022-01-24 04:07

몇 해 전 토요일 점심 약속이 있어 아이를 데리고 서울 강남구 도산공원 근처를 지날 때였다. 한 유명 스트리트 브랜드 편집숍 옆으로 죽 줄지어 앉아 있는 행렬을 보고 아이가 물었다. “엄마, 이 형아들 여기서 뭐하는 거야?” 아마도 뭔가 한정판을 발매하나 보다 하고 지나치려다 아이가 묻는 말에 대답은 해야겠어 형아들 얼굴을 흘끔 엿봤다. 자세히 보진 못했지만 피곤한 모습 사이로 기대감과 들뜬 느낌이 조금씩 배어 나왔다. “글쎄 뭐 좋은 거 기다리고 있나 본데? 옥토넛 대장님이 나오실 건가?” 아이가 한참 좋아하던 캐릭터 이름으로 둘러댔더니 씩 웃으며 이해가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어제저녁 퇴근길에 한 백화점 옆을 지나다 백화점을 둘러싸고 제법 길게 선 줄을 봤다. 아마도 샤넬이나 롤렉스 오픈런을 위해 밤을 새우려는 것 같은데, 차 안에서 얼핏 봐도 줄서기 대행을 하는 듯 허름한 패딩을 꼭 싸맨 모습에서 고단함이 묻어났다. 지난주에는 나이키에서 한정판 골프화를 선착순으로 현장 판매해 에스컬레이터를 거꾸로 달리는 아찔한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어쩌려고 현장 선착순 판매를 했을까 의아했는데 온라인 사전예약이나 추첨이 전문 리셀러들에게 장악돼 실소비자에게 기회를 주려는 취지였다는 후문이다.

모든 일의 범인은 리셀(resell)이다. 구하기 어려운 제품을 정가보다 비싸게 웃돈을 받고 되파는 리셀. 나이키처럼 대중적인 브랜드에 한정판 아이템은 팬덤과 프리미엄 가치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득템한 소비자도 만족감과 희열 그리고 앞으로 가치가 더 높아질 거라는 기대까지 품을 수 있어 한정판 판매는 브랜드와 팬 모두에게 즐거운 이벤트였다. 그런데 이제 명품이든 한정판이든 개인이 득템해 이익을 남기던 소위 ‘리셀테크’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혁신적으로 보였던 리셀 플랫폼과 기업화하는 전문 리셀러들로 인해 소비자 피해만 커지는 건 아닌지 눈을 크게 뜨고 봐야겠다.

윤소정 패션마케터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