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듣고싶은 설교] 축복에 이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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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듣고싶은 설교] 축복에 이르는 길

입력 2022-01-2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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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은 아들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실행하기 위해 모리아산으로 향했습니다. 그는 그곳에 제단을 쌓고,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 하나님의 사자로부터 급한 음성을 듣게 됩니다.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그리고 하나님은 이삭 대신에 번제로 드릴 숫양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준비해 주신 숫양으로 이삭 대신 번제를 드렸고, 그 땅의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고 지었습니다.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의 사역을 특정하는 이름인 동시에 아브라함의 신앙 고백입니다. ‘이레’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미리 본다’, ‘미리 준비한다’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여호와 이레’라는 말은 ‘미리 보시는 하나님’, ‘예비하시는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인생도 미리 보고 계시고, 인생에 필요한 것들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에게 있어서 모리아산은 어디입니까?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서 있던 그 땅이 여호와 이레가 된 것처럼 우리가 예배하는 그 자리가 ‘여호와 이레’의 자리입니다.

여호와 이레 속에는 우리가 깨달아야 할 중요한 메시지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로 여호와 이레는 주의 백성에게 주실 구원의 계획이 이미 오래전부터 마련되어 있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이시기 때문에 주의 백성에게 가장 좋은 것을 준비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하실 뿐만 아니라 구원의 축복을 주십니다. 그러나 창세기 22장을 읽으면서 어쩌면 마음이 불편해 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아들을 바치라는 말씀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이삭은 특별한 아들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어렵게 이삭을 주셔놓고 이제는 번제로 바치라고 하십니다. 어떻게 짐승이 아닌 자신의 자식을 제물로 드릴 수가 있겠습니까? 아들을 제물로 만들려면 각을 떠서 피를 내고 불에 태워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에서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하나님의 구원계획이 들어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관계를 통해서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와의 관계를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아들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살리기 위해 화목제물로 희생시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했을 때부터 인류를 향한 구원계획을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의 때가 되어 예수님을 보내셔서 구원을 이루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30년이란 시간을 보내시고 3년 동안 공생애 기간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유월절이 이르러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고 십자가의 길을 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갈보리 언덕 골고다에 제단을 만드셨고, 그 제단에서 독생자 예수님을 제물로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그 때에 예수님을 통해 구원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여호와 이레’에는 우리를 위해 예수님을 준비시키시고 구원하시고자 하는 놀라운 비밀이 숨어 있었던 것입니다.

둘째로 여호와 이레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풍성한 복을 내려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만남의 복을 주시고, 물질과 건강을 주시며 계속적으로 닥쳐오는 여러 가지 문제들을 해결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고 소원하는 것보다 더 차고 넘치게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주님은 주기도문을 통해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이렇게 구할 때 오늘도 하나님에 의해서 준비된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오늘을 도우시는 하나님께서는 내일도 도우시며, 모레도 도우시며 우리의 남은 모든 인생을 책임지고 도와주십니다. 우리는 오직 영원토록 변함없이 함께하시며 도와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우리가 체험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바로 믿음을 통해서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만이 여호와 이레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라고 물었을 때도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이었지만 그는 여호와 이레를 굳게 믿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믿음만이 우리를 순종의 삶으로 이끌어 갑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말씀에 순종하여 3일길이나 되는 모리아산을 향해 나아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발걸음에 특별한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사랑하는 자기 아들을 하나님께서 데려가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인간적으로는 도저히 견뎌낼 수 없는 큰 갈등을 겪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100세나 되어서 아들을 주셨으면서 왜 이제는 데려가겠다고 하시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상상을 초월하는 갈등과 고통의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아브라함의 믿음을 테스트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믿음이 좋았던 것이 아닙니다. 그는 믿음의 훈련을 통과하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이 생겼고, 굳건히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이 같은 고난은 믿음의 근육을 단련하는 과정입니다. 그러므로 고난은 변장 된 축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을 사는 동안에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고난은 하나님께서 강건한 믿음을 주시며 축복의 삶으로 들어가도록 안내하시는 통로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고난이지만, 그 안에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이 담겨있는 것입니다. 주의 백성에게 있어서 다가오는 고난은 마치 운동선수들이 모래주머니를 달고 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것은 우리를 힘들게 하고, 주저앉고 싶게 만들지만 결코 우리를 패배시키지 않습니다. 근력을 키우듯이 믿음을 성장시킵니다. 계속 모래주머니로 운동을 한 선수가 모래주머니를 풀고 달리면, 뛰어가는 차원을 넘어 날아가는 기분이 들 것입니다.

하나님은 출애굽 당시 430년 동안 종노릇을 하다가 자유의 몸이 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 앞으로 인도하셨습니다. 앞에는 홍해가 가로막고, 뒤에는 이집트 군대가 쫓아오고 있는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죽일 데가 없어 여기까지 인도하셨느냐’고 불평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믿음의 눈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의 원망과 불평 속에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홍해를 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홍해 바다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빠져 죽게 하지 않으시고 홍해를 가르시며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체험하게 하셨습니다. 추격해오는 이집트 군대를 백성들의 눈앞에서 홍해 바다에 수장시키시려는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이었습니다. 만약에 홍해 바다 없이 광야 길로 들어갔다면 바로의 명령을 받아 집요하게 추적해오는 이집트 군대의 공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홍해 바다에 그들을 수장시키심으로써 더 이상 대적이 따라올 수 없도록 하셨고, 완전한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보여주셨습니다. 때로는 고난을 받으면서 내 계획과 하나님의 뜻이 다르다며 불평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 때일수록 믿음을 붙잡고 주님을 바라보며 여호와 이레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때가 되면 놀라운 은혜를 부어 주십니다.

고난의 대명사로 불리는 욥은 이유도 모른 채 고난을 받았습니다. 육체의 질병과 자식들의 죽음, 하나님을 저주하며 떠난 배우자, 그리고 말로 상처를 준 친구들까지 욥은 온갖 종류의 고난을 다 받았습니다. 이러한 고난을 욥에게 퍼부어 하나님을 향한 그의 믿음을 빼앗으려는 것이 사탄의 목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욥이 다른 모든 것은 빼앗겼지만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큼은 빼앗기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욥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만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욥의 믿음을 귀하게 여기시고 전화위복의 기회를 여셨고, 그에게 갑절의 복을 주셨습니다. 욥은 고난을 통과하면서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라며 믿음이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임을 체험하며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여호와 이레는 믿음을 통해서만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전에는 하나님에 대하여 귀로만 듣고 지식적으로만 알았다면 이제는 눈으로 보고 내가 체험한 하나님을 믿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 어떤 상황이라도 믿음으로 하나님을 붙잡고 여호와 이레를 붙잡는다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놀라운 축복을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호와 이레를 굳건하게 붙들고 믿어서 하나님이 준비하신 모든 축복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황덕영 새중앙교회 담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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