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미각을 의심하다

국민일보

[살며 사랑하며] 미각을 의심하다

이원하 시인

입력 2022-01-26 04:05

나는 내 미각에 대한 자신감이 부족하다. 맛있는 음식을 먹고 맛있다고 말하지 못한다. 새로운 맛집을 발견해도 나의 입맛에만 맛있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선뜻 추천하지 못한다. 혼자만 찾아가던 식당이 전국적으로 유명해진 경험이 꽤 있는데도 자신감이 안 생긴다. 제주도 ‘협재 수우동’도 원래 나만 조용히 찾아가던 비밀 식당이었다. 내가 직접 요리한 음식에도 자신감이 부족하다. 맛있다는 칭찬을 들어도 그 칭찬을 믿지 못한다. 선의의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왜 내 미각을 믿지 못하는 걸까. 자신감을 가져도 좋으련만 생각처럼 쉽지 않다.

부다페스트에서 내가 사랑으로 점찍어둔 와인이 있다. 운명처럼 만나게 된 ‘보크(BOCK)’사의 헝가리 와인이다. 처음 마셨을 때 부드러운 맛에 놀라 코끼리가 들어가도 될 정도로 눈을 크게 떴었다. 한국에서는 구하기 힘든 와인이라 부다페스트에서 부지런히 챙겨 마신다. 술이 싫어지는 시기에도 이 와인만은 예외였다. 조만간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에 선물용으로 여러 병 가져갈 계획을 세우는데 갑자기 버릇처럼 소심해지고 말았다. 혹시 내 입맛에만 좋은 와인이면 어쩌지. 힘들게 가져갔는데 상대방이 싫어하면 어쩌지. 안 주느니만 못한 결과가 나오면 어쩌지.

이런 몹쓸 걱정을 하고 있는데 희소식이 들려왔다. 한 소믈리에 회사의 독점 계약을 통해 한국에서도 판매가 시작된다는 소식이었다. 이로써 나는 전문가에게 미각을 인정받은 셈이기도 하다. 편안한 마음으로 선물해줘도 되겠다. 그동안 내 미각을 못 믿고 살아온 세월이 우스웠다. 당장 내일부터 자신감이 생길 순 없지만 조금씩 당당해져 보련다. 시작은 반이라고 지금 한 가지 추천해볼까. 나는 보크사의 와인 중에서 2017년산을 가장 좋아한다. 사실 2017년산만 마신다. 내가 헝가리에서 느낀 첫인상이 그대로 담겨 있는 맛이다. 도대체 그해 포도농장에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특별한 맛이다.

부다페스트(헝가리)=이원하 시인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