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지방소멸을 쓰지 않는 이유

국민일보

[데스크시각] 지방소멸을 쓰지 않는 이유

권기석 이슈&탐사팀장

입력 2022-01-26 04:02

기획취재를 하는 입장에서 지방소멸 문제는 가급적 다루지 않으려 한다. 아기 울음소리가 더 들리지 않고 빈집이 늘어난다는 얘기는 성장하던 사회의 죽음을 상징하는 것이라 매력적인 기사 소재다. 그렇지만 여러 번 나온 이야기여서 참신성이 떨어진다.

지방소멸을 쓰지 않는 진짜 이유는 이를 경고하는 기사를 써도 문제가 나아지지 않음을 지켜봐 왔기 때문이다. 언론은 꽤 오래전부터 지방소멸에 관한 기사를 썼고 지금도 그 일을 계속하고 있다. 여러 보도는 지방이 활기를 잃어가는 현상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지방에 일자리를 늘려야 한다고, 공공기관을 이전해야 한다고, 지방대를 살려야 한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대안의 구체성에 한계가 있을지 몰라도 취지는 뚜렷했다. 수도권 집중을 막고 비수도권과의 격차를 해소하자는 것이었다. 그렇지만 변한 건 없고 상황은 오히려 나빠지고 있다. 그래서 지금 지방소멸 기사를 쓰는 건 ‘여기 이 도시가, 이 마을이 죽고 있어요’라고 선전하는 효과가 더 크다고 생각한다. 그 지역 청년은 자신이 사는 곳이 사라진다는 기사를 접할 때 어떤 생각이 들까. 지방소멸을 보여주는 기사는 청년들의 ‘탈고향’을 부추길 뿐이다.

지방소멸 문제가 개선되지 않는 궁극적 이유는 선거와 정치다. 여야 후보의 대선 공약을 보면서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균형발전 정책은 앞으로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걸 말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전국에 주택 311만호를 짓겠다고 공약했다. 이 가운데 서울 공급 물량이 107만호, 경기도·인천 물량이 151만호다. 83%가 수도권 몫이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도 250만호 가운데 절반 이상인 130만호를 수도권에 공급하겠다고 한다. 수도권에 충분한 집을 마련할 테니 오고 싶은 사람은 걱정하지 말고 오라는 메시지다. 이뿐 아니다. 두 후보는 GTX 노선 연장, 수도권 전철 지하화 공약을 경쟁적으로 발표하고 있다. 수도권을 30분 생활권으로 묶겠다고 한다. 실현 가능성이 있기나 한 건지 의심스럽지만 수도권에 지금보다 많은 주거·교통 인프라가 들어설 것은 확실해 보인다.

이런 공약은 균형발전, 지방소멸 문제가 표류해 온 본질적 이유를 보여준다. 후보들이 수도권에 빛 좋은 공약을 내는 이유는 더 많은 사람이 사는 곳에서 더 많이 득표해야 이길 수 있는 선거 제도 때문이다. 선거가 존속하는 한 한국의 균형발전은 이뤄지지 않을 것이다. 다음 대선에서도 그다음 대선에서도 후보들은 사람이 많이 사는 수도권에 더 달콤한 약속을 할 것이다. 집권 초기 부동산 공급은 부족하지 않다던 문재인정부가 막판에 공급 확대로 기조를 바꾼 이유도 선거를 의식해서라고 볼 수밖에 없다. 부동산 가격 급등에 성난 수도권 민심을 그대로 두면 선거에서 지겠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균형발전은 태어난 지 20년이 다 된 낡은 어젠다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진정성을 갖고 균형발전을 주창했을지 몰라도 그 뒤 정부들은 균형발전 어젠다를 정치적으로 이용만 했다. ‘우리도 지방을 위해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방패막이로 균형발전을 써먹었다. 실제로는 수도권 집중 현상을 주도하거나 방치하면서 말이다.

균형발전이 이룰 수 없는 목표이자 허튼 역할만 하는 어젠다라면 아예 폐기하는 게 낫다. 어디에 살든 높은 삶의 질을 누릴 수 있게 하는 게 궁극적 목표라면 균형발전 말고 다른 어젠다를 생각해볼 수 있지 않을까. 균형발전 명분에 매여 소멸하는 지역에 돈을 쓰는 것도 효율적 행위는 아니다. 인구 감소가 시작되는 등 사회 환경도 20년 전과 달라졌다. 지방소멸과 수도권·비수도권 격차 문제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 필요한 때다.

권기석 이슈&탐사팀장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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