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동철 칼럼] 중대재해처벌법 논란, 뭣이 중헌디?

국민일보

[라동철 칼럼] 중대재해처벌법 논란, 뭣이 중헌디?

입력 2022-01-26 04:20

산재공화국 오명은 비용 줄이고 이윤 늘리려 안전 외면한 결과
처벌 과도하다는 경영계 반발 사고 사망자만 하루 2.3명인 심각한 현실 외면하는 것
법 시행 계기로 노동자 생명 중시하고 안전 투자 확대하는 경영 문화 만들어 나가야

지난해 6월 광주광역시 학동 4구역 재개발 현장에서 철거 중인 건물이 붕괴돼 1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참사를 복기해 보자. 원청 업체인 HDC현대산업개발은 재개발 조합과 50억원에 철거 계약을 체결한 뒤 한솔기업에 하청을 줬고, 한솔은 광주 지역 백솔기업에 9억원에 재하청을 줬다. 실제 철거를 수행하는 재하청업체의 손에 9억원만 쥐어졌으니 철거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리 없다. 백솔기업 대표는 법정에서 “무리한 철거를 한 이유가 비용 절감과 원가절감 때문이었다”고 고백했다.

최근 발생한 광주 화정아이파크아파트 붕괴도 불법 재하도급이 주요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시공사인 HDC현대산업개발과 골조 공사 계약을 체결한 하청업체가 타설해야 하는데, 이 업체와 콘크리트 운반용 펌프카 임대 계약을 맺은 업체에 시공을 맡겨 사고를 불렀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재하도급 업체는 타설 업체가 아닌 데다 작업에 미숙련 외국인 노동자들만 투입했다고 한다.

산업재해가 노동자의 과실로 인해 발생하기도 하지만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무시할 수 없다는 걸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불법 재하도급은 법으로 금지하고 있지만 감독이 허술한 사각지대를 중심으로 만연해 있다. 원청인 종합건설사가 모든 공사를 직접 수행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청 시스템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문제는 원청에서 하청, 재하청으로 내려가는 과정에서 공사비 후려치기, 비용 떠넘기기가 일반화돼 현장의 안전을 위협한다는 데 있다. 저가에 하청, 재하청을 따낸 실제 시공 업체는 이윤을 남기려면 자재비와 인건비를 줄이고, 규정을 어겨가며 공기를 단축하고, 위험한 작업 환경을 방치하기 십상이다.

중대재해처벌법이 27일부터 50인 이상 사업장을 대상으로 시행되는데, 산재공화국이란 오명을 떼어내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관심사다. 이 법은 법인, 공공기관, 개인사업주가 운영하는 사업장에서 사망사고 등 중대 산재가 발생했을 경우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산업안전보건법이 현장 소장 등 실무진 처벌에 초점을 맞췄다면 중대재해처벌법은 원청 업체까지 포함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의무 주체와 처벌 대상으로 명시하고 있다. 중대재해가 발생해도 실무진에게 책임을 떠넘기고, 현장 개선을 소홀히 해 온 경영책임자나 기업의 행태를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는 게 법의 취지다.

산재는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경우가 많아 법 시행으로 당장 산재 사망사고가 대폭 줄어들 것이라 기대하는 건 과욕일 게다. 하지만 경영책임자가 산업재해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안전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는 촉매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작지 않다. 지난해 1월 법 제정 이후 기업과 지방자치단체들이 안전 관리 조직을 신설·확대하고 관련 예산 및 인력을 확충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건 이 법이 몰고 온 긍정적 나비효과라 할 수 있다.

경영계는 처벌이 과도하다며 반발하고 있는데 산재의 심각성을 외면한 행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산재 사고로 828명이 사망했다. 2016년 969명, 지난해 882명보다는 줄었지만 하루 2.3명꼴로, 적은 수가 아니다. 목숨보다 더 귀한 게 뭐가 있겠나. 사망자는 누군가의 부모였을 테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귀한 자식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죽음과 가족의 고통 앞에서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억원 이하의 벌금형’이 과도한 처벌이라는 주장은 과도하고 염치없다. 사망자가 발생해도 경영책임자가 반드시 처벌 받는 것도 아니다. 법이 요구하는 안전보건 확보 의무를 충실히 이행했다면 면책되고 책임이 인정돼도 정상 참작의 여지가 있으면 실형을 피할 길이 열려 있다. 모호한 규정은 개정해 예측 가능성을 높여나가야겠지만 ‘꼼수’ 등으로 부당하게 책임을 회피하지 못하도록 법의 실효성을 높이는 방안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경영책임자도 이제는 마인드를 바꿔야 한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희생시키면서까지 이윤을 늘리는 식의 경영은 멈춰야 한다. 안전에 대한 투자는 불필요한 비용이 아니다. 안전을 외면했다가 이를 통해 아낀 비용이나 기대 이익과는 비교할 수 없는 막대한 손해를 보거나 기업 생존 자체가 위협 받을 수 있다는 걸 광주 참사가 또렷하게 보여주고 있지 않나. 안전에 대한 투자 비용이 아까운가. 그렇다면 영화 ‘곡성’의 명대사를 곱씹어 보자. “뭣이 중헌디?”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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