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국가와 시장이 손을 잡아야 할 때다

국민일보

[여의도포럼] 국가와 시장이 손을 잡아야 할 때다

성경륭(한림대 명예교수·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입력 2022-01-27 04:02

국가와 시장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자본주의 경제에서 가장 어렵고 중요한 이슈 중 하나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대체로 세 가지 관점이 존재한다.

첫째, 국가는 시장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서는 시장이 효율적인 자원 배분을 통해 투자, 고용, 성장을 만들어내는 핵심적 기제이므로 국가의 역할은 사회질서 유지와 시장 실패 교정 정도의 최소한에 그쳐야 한다는 것이다. 자유주의 또는 신자유주의적 시각이 여기에 속한다.

둘째, 시장은 본원적으로 불평등과 불안정을 만들어내므로 국가가 시장을 폐지해 계획경제 체제를 도입하거나 강력한 법규와 조세 체계로 통제해야 한다는 관점이다. 국가사회주의나 초기의 사회민주주의적 시각이 여기에 해당한다.

셋째, 국가와 시장은 기본적으로 상호 보완적 협력 관계를 가진다는 관점이다. 이 관점은 국가는 시장을 위해 사회질서 수립, 시장 규율을 위한 법·제도의 제정, 연구개발을 위한 재정 지원, 사회안전망 구축 등 다양한 기능을 담당하고 시장은 기술 혁신, 투자와 고용, 경제 성장 등을 통해 국민 복지와 국가 재정 확보에 기여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국가와 시장의 대립적 관계를 넘어 양자의 상호 보완과 시너지를 강조하는 다양한 ‘제3의 길(Third Way)’ 시각이 이 관점에 속한다.

세 가지 관점 중 영국의 마리아나 마추카토 교수가 2021년 출판한 ‘미션 경제학’이라는 책은 세 번째 관점을 대변하는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은 그 이전에 제기된 좌파와 우파의 이념적 절충을 시도하는 제3의 길과는 뚜렷이 구별되는 특징을 보인다. 무엇보다도 현실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와 시장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가를 경험적으로 분석하는 데서 출발한다. 예컨대 미국의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달 탐사를 국가적 미션으로 제시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특별팀 조직과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자 국가와 시장 사이에 광범위한 협력이 일어나고, 새로운 기술 발전이 산업과 시장의 확대를 가져오는 놀라운 변화가 발생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이런 현상은 국가가 시장에 모든 것을 맡겨둔 채 시장 실패가 일어날 때만 그것을 교정하는 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이것은 국가가 시장을 폐기하거나 시장을 과도하게 규율하는 상황에서는 결코 나타날 수 없는 현상이라고 보아야 한다.

따라서 미국의 달 탐사 사례는 국가와 시장이 공동의 목표를 공유할 때 어떤 역동적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마추카토는 이런 방식의 협력이 코로나19 대응,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 격차의 해소, 기후변화 대응처럼 국가나 시장 어느 한쪽의 노력만으로는 해결되기 힘든 공공재 영역의 거대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도 적용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인식은 감염병 위기 극복, 디지털 전환, 기후변화 대응, 양극화 해소, 저성장 탈피, 저출산·고령화 해결, 미·중 갈등 대응과 같은 거대 문제를 풀기 위해 국가와 시장이 적극적으로 협력해야 하는 한국 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돼야 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상황은 그렇게 녹록하게 보이지 않는다. 국가와 시장 사이에는 많은 불신과 긴장이 가로놓여 있기 때문이다. 우선 시장 내의 다양한 불공정, 고용 불안정, 분배 불평등, 이익집단의 과도한 영향력 등이 큰 장애 요인이다. 국가가 불필요하게 시장에 과도한 규제를 부과하는 것도 문제로 지적될 수 있다.

조만간 새 정부가 출범하면 공정경제 확립, 특수이익 제어, 분배 개선, 사회안전망 강화, 적극적 규제 혁신 등을 통해 국가와 시장의 관계가 협력적 관계로 재구성되기를 기대해본다. 나아가 이런 재편된 구조 속에서 국가와 시장이 코로나19, 경제 침체, 저출산과 고령화, 기후변화 등과 같은 거대 공공재 문제를 함께 풀기 위한 거국적 차원의 혁신 연합을 구축해보기를 제안한다.

최근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운동은 개별 국가 내에서 이러한 혁신 연합이 가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2020년 이후 인구의 자연 감소가 시작되고 있는 한국 사회는 미래 존립이 위태로운 장기 비상 시대에 접어들고 있다. 미션 경제학의 함의를 활용해 국가와 사회가 공동의 미션을 해결하기 위해 서로 손을 맞잡는 새로운 날을 조속히 만들어야 한다.

성경륭(한림대 명예교수·전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이사장)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