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탄소중립에도 석유수요가 견고한 이유

국민일보

[기고] 탄소중립에도 석유수요가 견고한 이유

권오복 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장

입력 2022-01-27 04:08

‘말(言)이 사고(思考)를 결정한다’는 말이 있다. 이 시대에 가장 흔한 말은 코로나이고, 그다음은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일 것이다. 코로나는 현재를 이야기하지만, 탄소중립과 에너지 전환은 미래를 말한다. 미래를 향한 말에는 희망이 담겨 있다. 그래서 정확한 현실을 잊게 할 때도 있다. 코로나19 발생 직전인 2019년 세계 석유 소비량은 하루 1억 배럴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그리고 올해 혹은 내년에 석유 소비량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직관적으로 탄소중립 기조에서 재생에너지가 증가하게 되면 석유 수요가 감소할 것 같다. 그러나 지난 20년간의 현실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유럽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2000년 65Twh에서 2019년 837Twh로 약 12배로 증가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석유 소비량은 단지 8% 감소하는 데 그쳤다. 이러한 현상의 원인은 재생에너지와 석유의 용도가 다르다는 데 있다. 재생에너지는 주로 발전용 연료로 쓰이는 반면 석유는 약 5%만 발전용 연료로 쓰이고, 약 60%는 운송용 에너지로 사용된다. 태양광과 풍력으로 전기를 만들 수 있지만 그것으로 비행기와 선박 연료를 대체할 수는 없다.

이처럼 석유와 재생에너지 용도가 다르다는 점 이외에도 석유 수요 증가를 예상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의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는 인구와 개발도상국의 수요 증가다. 지난 20년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하지 않은 국가의 석유 수요는 약 90% 증가했다. 지금도 주요 개도국은 경제 성장을 우선시하며, 석유 소비 감축에 소극적이다.

둘째로 운송용 에너지원을 대체하기 쉽지 않다. 원유의 약 60%가 운송용 에너지원이므로 운송용 에너지원이 다른 자원으로 대체돼야 수요가 감소할 수 있다. 그런데 항공기와 선박 연료는 대체 자원이 거의 없다. 다만 전기차가 내연기관차를 대체할 경우 석유 수요를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전기차 성장세에도 불구하고 실질적 석유 소비 감소가 나타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현재 세계 전체 차량(약 15억대)에서 전기차 비중은 1% 이하(약 1500만대)다. 아직 전기차가 의미 있는 수준으로 운송용 석유 수요를 줄인다고 볼 수 없다. 또한 전기차 비중이 1%일 때와 10%에 도달한 이후 성장은 전혀 다른 문제가 된다.

이같은 석유 에너지의 대체 한계성 등을 고려한 수요 예측을 감안할 때 석유 수요 증가세는 상당 기간 유지될 가능성이 크다. 국제에너지기구(IEA)도 2050년 석유 수요가 2020년 대비 약 17%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결론적으로 석유 시대를 좀 더 준비할 필요가 있다. 장기적으로 석유 수요가 증가함을 염두에 두고, 관련 기관 및 기업의 역할을 생각해야 한다. 물론 새로운 에너지원을 향한 도전도 함께 필요하다.

권오복 한국석유공사 스마트데이터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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