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동 칼럼] 제왕적 대통령제 이대로 둘 것인가

국민일보

[박현동 칼럼] 제왕적 대통령제 이대로 둘 것인가

입력 2022-03-22 04:20

완력정치가 자해정치를 초래
승자 아량, 패자 반성은커녕
분열 남긴 위험한 대선 결과

악재로 둘러싸인 국가적 위기
국가이익 앞에 멈춘 동맹가치
우크라 사태가 여실히 보여줘

승자독식 권력 형태 개편해야
정략적 접근 말고 숙의가 필요
대선 끝난 지금이 적기 아닌가

바둑엔 반집승(패)이 있다. 프로기사 대국에서 종종 나온다. 불계패(승)도 있다. 이 경우 패배를 인정하고 집수를 계산하지 않는다. 91집 이상의 차이를 말하는 만방도 있다. 선거도 바둑과 비슷한 면이 있다. 한 표만 많이 얻어도 이긴다. 바둑에선 반집패를 겸허히 수용하고, 불계패도 인정한다. 반면 선거는 다르다. 무효소송을 벌이거나 그렇지 않은 경우라도 지지자들 사이에 불복 분위기가 넘치고, 승자에 대한 저주로 이어진다. 때문에 승자의 함성만큼 패자의 증오가 남는다. 대한민국 정치가 그렇다. 제왕적 대통령중심제의 폐해라고 분석하는데 틀렸다고 하긴 어렵다.

대선은 끝났고, 승자와 패자도 가려졌다. 그러나 보름 가까이 지나도록 승자의 ‘아량’도, 패자의 ‘반성’도 없다. 대통령과 당선인의 첫 대면이 회동 4시간을 앞두고 무산된 것이 이를 노골적으로 상징한다. 일각에서는 24만여표에 불과한 득표 차이를 절묘한 결과라고 해석하지만 꿈보다 해몽이다. 문재인정부엔 책임을 물었고, 윤석열 당선인에겐 경고를 보냈다는 의미인데 엄밀히 관찰하면 위태로운 결과다. 문재인정부가 5년 내내 휘둘렀던 완력정치는 결과적으로 자해정치가 됐고, 이는 분열의 불씨를 남겼다. 이긴 쪽이나 진 쪽 모두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뒤집어 생각하면 분열과 갈등을 잉태하고 있다.

일찍이 많은 사람들이 대선 이후를 더 걱정했다. 대선 과정에서 상대에게 견디기 힘든 상처를 내고 심지어 그 상처에 소금을 뿌렸다. 게다가 망국적 병폐로 지적돼온 지역 갈등에 세대, 젠더, 계층 갈등, 무속 논란마저 동원됐다. 과거에도 이런 경향이 없지 않았으나 이번엔 더 심하게, 더 복잡하게 나타났다. 승자 앞에 놓인 길은 꽃길이 아닌 가시밭길이라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치란 갈등을 대화로 녹여내는 타협의 과정이고, 이를 통해 사회가 발전하고 민주주의도 유지된다고 하는데 우리 정치엔 대화와 타협이 없다. 대선 이후를 걱정하는 또 다른 이유는 후보들의 달콤한 공약 때문이다. 아이를 대신 낳아주겠다고 약속하지 않은 게 다행일 정도다. 그간의 상황을 보면 두 달여 앞으로 다가온 지방선거는 필시 화해와 통합의 훼방꾼이 될 우려가 크다. 이뿐인가. 국제 사회는 냉정하다. 동맹이 소중하지만 자국의 이익 앞에선 주춤거린다는 사실을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봤다. 하나로 뭉쳐도 위기를 극복해 나가기 쉽지 않을진대 진영으로 완벽히 쪼개져 있으니 말해 무엇하랴. 마냥 환호작약할 수 없는 이유다.

투표 결과가 전하는 메시지는 분명 화해와 통합이다. 불행하게도 현실은 우리가 소망한 대로 흘러가지 않았다. 원인은 다양하지만 무엇보다 승자독식의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비롯된 필연적 한계라는 지적이 많다. 이번 선거만 하더라도 48%의 지지율이 100%의 권력을 행사하게 된다.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했던 문 대통령의 약속이 지켜지지 않은 것도 통치 스타일에서 기인한 측면도 있지만 정치 시스템의 한계에서 비롯됐다는 주장도 이래서 나온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제왕적 대통령제를 끝내야 한다는 견해가 꽤 있다. 정치권과 학계 등 전문가 집단에서 오래전부터 제기돼 왔다. 1987년 이후 유효하게 작동했으나 이제 생명력을 다했다는 것이다. 집권세력의 일방적 국정운영과 그에 따른 의회정치의 실종, 3·9 대선 결과 등을 보면 딱히 부정하기도 힘들다. 대통령제든 의원내각제든 이원집정부제든 장점을 말하려면 수없이 많고, 반대로 단점을 들자면 장점만큼 많다. 그래서 대통령제 토대 위에 내각제 요소를 가미한 또는 그 반대의 정부 형태를 채택하는 국가도 적지 않다. 어떤 정부 형태가 적합한지는 그 나라의 전통과 민족적 특성, 국민의 정치의식에 따라 다를 수 있다. 정답은 없다는 것이다. 같은 민주주의 국가이면서도 미국은 대통령제를, 일본과 유럽 다수 국가들은 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점을 봐도 그렇다.

물론 권력 구조와 정부 형태 개편이 절대적 해법은 아니다. 그렇더라도 현재의 권력 구조와 정부 형태가 민주주의와 국민통합을 방해한다면 이대로 둬선 안 된다. 방치하면 2027년에도 똑같은 고민을 할 게 불을 보듯 뻔하다. 딱히 방향을 정하지 말고 국민적 컨센서스를 위한 숙의를 시작해 보자는 것이다. 다만 정략적으로 접근했다간 자칫 개헌의 블랙홀에 빠질 수 있다는 점은 경계해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 이제 대선은 끝났다. 지금이 적기다.

박현동 편집인 hdpark@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