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여가부 존치시키되 세종시로 보낸다면…

국민일보

[여의춘추] 여가부 존치시키되 세종시로 보낸다면…

고세욱 논설위원

입력 2022-03-25 04:20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고집이 엄청나다는 것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 문제로 확연히 드러났다. 국민과의 약속은 무조건 지켜야 한다며 돌진하는 모습은 이전 대통령들에게선 볼 수 없는 면모다. 고집 제 2탄은 여성가족부 폐지가 아닐까. 당선인의 여가부 폐지 공약은 집무실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대선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다. 팽팽한 대선 결과로 호흡 조절이 예상됐지만 윤 당선인은 여가부 폐지 이행이라는 직진을 택했다. 정치인에게 빚이 없다던 윤 당선인은 이대남에겐 부채 의식이 많이 남아 있는 것 같다. 대통령직 인수위도 여가부를 ‘없어질 부서’ 취급하고 있다. 여가부로부터 파견 인력도 받지 않고 업무보고도 후순위로 밀어냈다.

하지만 여가부 폐지는 집무실 이전과 달리 법 개정 사안이다. 172석의 더불어민주당이 거부하면 실현 불가능하다. 여가부는 문재인 대통령이 첫 민주정부라 지칭한 김대중정부에 의해 탄생됐다. 민주당이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부서의 폐지를 지켜볼 리 없다. 대선에서의 젠더 갈등을 고려하면 여야 합의로 원만히 풀어야 한다. 그렇다면 명칭 변경과 부처의 성격을 조정하는 선에서 존치 시키되 비정상의 정상화를 추구하면 어떨까. 바로 여가부의 세종시 이전이다.

2005년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된 뒤 2012년부터 부처들이 세종시로 이전했다. 이전 대상에서 제외된 곳이 통일부, 외교통상부(현 외교부), 법무부, 국방부, 행정자치부(현 행정안전부), 여가부 6개다. 2017년 10월 특별법 개정안에서 행안부가 이전 제외 대상에서 삭제돼 남은 부처는 5개가 됐다. 노무현정부는 신행정수도 건설을 추진하다 관련 법이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정을 받자 행정중심복합도시로 축소했고 안보 외교 법치에 필요한 부처들을 서울 등 수도권에 남기는 것으로 조정했다. 그런데 여가부가 여기에 포함된 것이다.

국회의원, 공무원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처음 법이 제정될 때 여성계가 여가부의 세종시 이전을 반대했다. 이전이 여성 홀대라는 항의도 있었다 한다. 노무현정부도 이를 의식했고 결국 여가부는 서울 사수에 성공했다. 요즘 시각에선 이해하기 힘든 논리지만 막 자리잡은 부처 배려 차원으로 볼 순 있다. 그런데 지금도 이런 기조가 유지되는 것은 문제다. 2017년 개정안 발의에 참여한 한 의원은 “서울에 여성 단체들이 많아 여가부가 계속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여성계 의견이 있었다”고 전했다. 2020년 총선 압승으로 거대 여당이 된 민주당의 강준현 세종시을 의원이 여가부의 세종시 이전을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2년째 계류 상태다. 그 사이 세종시에는 국무총리실 등 43개 중앙행정기관이 자리잡았다. 여가부는 “법에 따를 뿐”이라며 국회 뒤에 숨은 채 서울살이의 특혜와 특권을 향유하고 있다. 영화 대사처럼 ‘호의가 계속되니 권리인 줄’ 안 모양이다. 세종시 부처들이 여가부에 왜 반감이 많은지 이해가 된다.

가장 아파야 할 것은 국민의 싸늘한 시선이다.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서 2020~2021년 15차례 ‘대한민국 행정부 정책수행 평가’ 조사를 했는데 18개 부처 중 여가부는 10차례나 긍정 평가 최하위를 기록, 타 부처를 압도했다. 나머지 5번도 17위였다. 응답자가 남성 위주인가 봤다. 리얼미터 단독조사 때는 18세 이상 남녀 9000명, 언론사와의 조사 때는 1만8000여명이나 됐다. 진영 논리를 빼고 일에 대한 국민 평가만 보면 여가부는 폐지가 답이다.

여가부의 서울 존치는 공정과 상식에 어긋난다. 누가 여가부를 외교 안보급 핵심 부처들과 비중이 같다고 여기겠나. 여가부는 업무 특성상 보건복지부, 교육부, 고용노동부 등과의 협업이 중요하다. 정책 효율성을 위해서라도 세종시가 더 적합하다. 여가부가 세종시로 갈 이유를 10가지 들 수 있다면 서울에 남을 이유는 단 1도 없다. 여성계 눈치를 봐온 여야 의원들도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 윤석열정부는 이런 공감대를 활용해야 한다. 협치할 수 있는 부분은 살리고 차이를 조금씩 메우는 게 취임 후 여소야대 정국을 푸는 방식이다. 코로나 극복, 4차 산업혁명, 북핵 문제 등이 산적해 있는데 여가부 논쟁으로 시간을 보내선 안된다. 윤 당선인은 집무실 이전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공간이 의식을 지배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 여가부에 가장 필요한 말이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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