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총리 후보군, 참신하지 않다

국민일보

[여의춘추] 총리 후보군, 참신하지 않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입력 2022-04-01 04:02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이 30일 새 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맡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안 위원장의 생각은 금주 들어 바뀐 것으로 알려졌다. 29일에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을 만나기 전만 해도 초대 총리를 꼭 하고 싶다는 게 그의 생각이었다고 측근들은 전했다. 윤석열정부 국정 로드맵 설계를 총지휘한 사람으로서 본인이 초대 총리를 맡아야 계획대로 실천할 수 있을 것이란 책임의식 때문이었다고 한다. 특히 ‘과학기술 먹거리’와 ‘방역’이 중요한 때여서 본인이 나름대로 잘할 수 있으리란 이유도 있었다. 그래서 안 위원장 측근들은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안철수 과욕론’을 제기한 이후 이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지난 주말부터 동분서주했다. 주식 백지신탁은 걸림돌의 ‘ㄱ’자도 안 된다는 얘기도 했다. 그런 물밑 설명이 한창 이뤄지던 와중에 안 위원장이 전격적으로 총리 자리를 고사한 것이다.

그간 거론된 총리 후보군 가운데 안 위원장이 행정 쪽에선 뉴페이스이고, ‘미래’를 강조해 왔기에 새 정부의 새 출발에 그나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정권 창출의 일정 지분을 가졌기에 대통령에게 국민 목소리를 제대로 전달하는 책임총리를 할 수 있고, 이를 통한 권력 분산 효과도 꾀할 수 있으리란 기대도 있었다.

안 위원장이 배제됐지만 다른 총리 후보군이 그다지 참신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유력한 후보인 한덕수 전 총리부터 철 지난 인사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김대중·노무현·이명박 세 정부에서 요직을 거쳤고, 게다가 총리를 이미 해봤던 인물이다. 재임 기간 일 처리는 무난했지만 강단 있거나 개혁성이 엿보인 경우도 별로 없었다. 초대 총리라는 자리가 새 정부, 새 출발의 상징과도 같은 것인데 국민들한테 얼마나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능력이 출중하다 해도 한 사람만 계속 쓰는 것 역시 엘리트 만능주의로 비칠 여지가 있다. 한 전 총리와 함께 거론된 임종룡 전 금융위원장 등도 참신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당선인 쪽에선 김한길 인수위 국민통합위원장, 박주선 대통령취임준비위원장, 주승용 전 국회부의장, 김병준 인수위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도 총리 또는 다른 장관급 인사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국민통합에 적합한 인사라는 이유에서다. 그들이 과거에 현 여권에 머물렀거나 호남 출신이라서 그런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총리나 다른 중요한 자리에 앉힌다면 정작 현 여권에서 국민통합형 인사라고 손뼉을 칠까. 국민통합형 인사라 함은 반대 진영에서도 환영하는 인사여야 하는데, 여권에서 환영은커녕 자신들을 등지고 나갔다고 뒷말이 나오는 사람들을 앉히면 그게 무슨 통합이겠는가. 당선인 쪽에선 나름 범여권 인사를 중용한다고 생각할 줄 몰라도, 저쪽 보기에 그렇지 않다면 통합이 아닌 셈이다.

이번 일을 거치면서 당선인 측의 국민통합에 대한 인식이 좀 안이하게 비친다. 과거 여권에 몸담은 적이 있다고 해서 국민통합형 인물이라고 내세우는 것 자체가 편의주의적 발상이다. 출생지 자체에 무게를 두는 것도 마찬가지다. 한 전 총리와 임 전 위원장의 경우도 각각 전북 전주, 전남 보성 출신이라서 국민통합형 인사라는 평가가 나오지만 서울에서 중고교를 다니고, 4살 때 서울로 이사 온 경우도 지역 통합형 인사로 봐야 하는지 갸우뚱해진다.

당선인이 시간이 걸리더라도 좀 더 후보군을 넓혀보기 바란다. 다양한 사람들에게 중요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대한민국의 인재풀이 두터워질 수 있다. 경제라고 해서 경제관료 출신들만 중용하면 나라 먹거리 창출에 한계가 있을 수도 있다. 통합이나 화합에 대한 인식도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단순한 출생지보다 정치 성향과 사회적 문제를 대하는 태도, 전문성, 연령, 직군 대표성, 소득 수준, 성별 균형, 장애 유무, 주된 거주지 등을 안배한 통합이 더 중요한 시대가 됐다. 당선인이나 인수위, 국민의힘이 보기에 좋은 통합이 아니라 국민 다수가 보기에 좋은 통합이라야 진정한 통합이라 할 수 있다. 이미 총리감이 굳어졌다면 향후 있을 장관 인사와 청와대 인사, 공공기관 인사에서라도 그런 기준이 반영됐으면 한다. 새 정부가 이전 정부들과 많이 달라져야 하겠지만, 그중에서도 인사를 참 쌈박하게 잘한다는 평가를 받는 게 급선무라고 본다.

손병호 편집국 부국장 bhs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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