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졌잘싸’에 취해버린 정당

국민일보

[박정태 칼럼] ‘졌잘싸’에 취해버린 정당

입력 2022-04-05 04:20

20년 집권 운운하다 5년 만에 정권 내주고도 정신 못 차려
말로만 반성하고 쇄신은 전무 대선 석패에 평가 분석도 없어
책임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송영길 출마 선언은 국민 우롱
독선과 아집도 버리지 못하고 ‘검수완박’ 입법 강행할 태세
국민은 다당제 정치개혁 주문… 민심 오독 말고 약속 이행해야
대선 패인 뼈아프게 복기 않고 헛발질하면 심판받을 수밖에

진보 20년 집권론을 운운하던 더불어민주당이 집권 5년 만에 정권을 내주고도 정신을 못 차린 모양이다. 이번 20대 대선은 국민의힘의 승리라기보다는 민주당의 패배다. 1987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이후 ‘정권교체 10년 주기설’마저 깨뜨렸다.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2018년 지방선거, 2020년 총선 등 전국 단위 선거 4연승으로 기고만장해진 결과다. 내로남불과 위선, 오만, 독선, 아집, 무능, 꼼수 등이 현 여권을 상징하는 용어가 됐다. 부동산 정책 실패는 결정타였다. 지난해 4·7 재보선 참패로 심각한 경고음이 울렸건만 민주당은 민심과 동떨어진 강성 팬덤 정치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바람에 정권 심판론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럼에도 말로만 반성할 뿐 쇄신 의지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당내에 만연한 ‘졌잘싸’(졌지만 잘 싸웠다) 분위기에 취해버린 탓이다. 0.73% 포인트 차(24만여표) 석패, 87년 이후 대선에서의 민주당 계열 후보 최고 득표(1614만여표)가 모르핀 효과를 냈는지 패배의 아픔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그러니 패배에 대한 평가 분석이나 통렬한 자성의 목소리도 없이 6·1 지방선거에 올인한 채 설욕전을 치를 태세다. 오죽했으면 박용진 조응천 의원 등 소신파들이 민주당이 제대로 반성하고 혁신하고 있는지 의문스럽다며 쓴소리를 이어갈까.

바둑의 고수들은 한 판을 지게 되면 돌을 처음부터 다시 놓아보는 복기를 통해 각 수의 잘잘못을 검토한다. 그리고 고통스럽지만 완착과 패착을 가려내면서 실패의 원인을 정확히 규명한다.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다. ‘바둑 황제’ 조훈현 9단은 복기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승리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습관을 만들어주고, 패배한 대국의 복기는 이기는 준비를 만들어준다.” 이게 진정한 고수의 태도인데 지금 민주당은 복기도 없이 얼렁뚱땅 넘어가려 하고 있다.

책임을 지는 이도 없다. 지도부의 핵심으로 책임을 통감해야 할 윤호중 원내대표가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다가 당 안팎에서 사퇴 요구를 받는 촌극이 벌어진 건 약과다. 송영길 전 대표의 느닷없는 서울시장 선거 출마 선언이야말로 황당하기 짝이 없다. 대선 패배의 총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난 지 한 달도 되지 않아 출사표를 던졌다. 주소지도 부랴부랴 인천에서 서울 송파구로 옮겼다. 인천에서 5선 국회의원을 지내고 시장까지 했던 그가 자신의 정치적 기반을 버리고 서울시장 후보로 나오겠다는 건 어떤 이유를 들이대도 명분 없는 일이다. 대선 민심과도 맞지 않는다. 당내에선 대국민 사과를 요구하는 등 반발 기류가 만만치 않다. 대선 과정에선 이재명 후보가 열세를 면치 못하자 차기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86세대 용퇴론’까지 제기했던 그다. 그런데 총선보다 더 비중이 큰 서울시장 선거 전면에 나서겠다니 이 무슨 해괴한 논리인가. 국민을 우롱하는 행태다.

독선과 아집도 버리지 못했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외친 게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이다. 검찰의 6대 범죄 수사권을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에 넘기고 검찰은 기소와 공소 유지만 전담하는 공소청으로 만드는 입법을 강행하겠다는 얘기다. 지난해 초 극렬 친문 단체의 압박을 받은 강경파 의원들이 주도했다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걸 대선 패배 이후 다시 끄집어냈다. 윤석열정부 출범 이후 예상되는 전임 정권의 권력형 비리 의혹 수사를 무력화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새 정부에선 법안이 통과되더라도 대통령 거부권 행사에 가로막힐 수 있으므로 문재인 대통령 퇴임 전에 밀어붙이겠다는 심산이다. 검찰을 통한 ‘보복 수사’가 현실화될 수 있으니 선제적으로 차단하겠다는 생각도 하는 듯하다. 하지만 죄를 짓지 않았다면 이를 겁낼 까닭이 없다. 게다가 검수완박은 국가 형사사법체계의 근간을 바꾸는 중차대한 문제다. 정략적으로 접근할 사안이 아니다. 거대 의석을 무기로 4월 임시국회에서 입법 폭주에 나섰다간 여론의 거센 역풍을 맞을 것이다.

민주당은 대선 민심을 오독하지 말아야 한다. 상식이 우선이다. 민심은 검수완박이 아니라 정치개혁을 주문하고 있다. 지금 민주당이 시급히 추진해야 할 것은 대선 전에 약속한 다당제 정착을 위한 정치개혁이다. 민심에 역행했다간 6월 지방선거에서도 국민의 마음을 얻지 못할 것이다. 대선에서 왜 졌는지를 뼈아프게 복기하지 않고 헛발질을 계속한다면 또다시 국민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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