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윤석열 당선인의 한 달

국민일보

[여의춘추] 윤석열 당선인의 한 달

입력 2022-04-08 04:05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한 달이 지났다. 설렘과 기대보다 갈등이 부각된 한 달이었다. 잘하려고 했겠지만 한계가 많이 노출된 시간이었다. 윤 당선인의 한 달을 상징하는 사건은 대통령 집무실 이전, 한덕수 국무총리 지명, 신구 권력의 인사 갈등이었다. 세 개의 사건 진행 과정을 보면 공통적 요인들이 발견된다. 이상과 현실의 괴리, 강력한 반대 세력의 존재, 타협의 필요성이다.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광화문 대통령 공약에서 시작했다. 광화문 대통령은 윤 당선인의 이상이자 문재인 대통령이 추구했던 이상이었다. 이상은 현실적 검토 단계에서 한 번 꺾였다. 경호와 장소라는 현실적 문제가 발목을 잡았다. 문 대통령은 이 단계에서 포기했다. 윤 당선인은 용산 이전이라는 차선을 선택했다. 일종의 절충이었는데, 이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문 대통령이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었다. 신속하게 진행하려던 집무실 이전 작업은 중단됐다. 작업이 다시 진행된 전환점은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의 회동이었다. 예정보다 12일 늦춰진 회동이었다. 정부의 몽니인지 인수위원회의 조급함인지를 따지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이전 작업을 위해서는 정부의 협조가 필요했고, 인수위는 협조를 얻기 위해 12일의 시간을 써야 했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가 윤석열정부 첫 국무총리로 지명됐다. 윤 당선인은 대선 기간 국민통합 정부를 얘기했고, 내각에 힘을 싣겠다고 약속했다. 때문에 첫 국무총리는 중요했다. 윤 당선인의 선택은 한 후보자였다. 한 후보자는 대통령과 권한을 나눌 만한 정치적 배경도 없고 참신한 인선이라고 말하기도 어렵다. 한 후보자를 선택한 것은 현실을 고려한 일종의 타협이었다. 국정 운영의 경륜과 검증된 인사라는 장점, 김대중정부와 노무현정부에서 요직을 지냈다는 점이 두루두루 고려됐을 것이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전두환 발언으로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전 전 대통령이 정치를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전문가들에게 일을 맡겼기 때문이라는 발언이었다. 윤 당선인의 전두환 발언은 진심이었을 것이다. 지금도 윤 당선인이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인사를 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일을 맡기겠다고 찾아낸 전문가들이 아직은 썩 훌륭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큰 방향을 향해 나아가는 게 중요하다. 어차피 산 좋고 물 좋고 정자 좋은 곳은 없다. 광화문 대신 용산을, 안철수 대신 한덕수를 선택한 결정이 나쁘다고 보지 않는다. 윤 당선인이 지난 한 달간 보여준 결정들은 현실과 타협하고 반대 세력과 타협하는 과정이었다. 최선 대신 차선, 차선 대신 차차선을 선택하는 과정이었다.

임기 말 인사 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이상적인 모습은 인수위와 청와대가 인사 문제를 협의해서 처리하는 것이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인수위가 선택한 방식은 충돌이었다. 그러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 감사위원 임명 문제는 감사원이 인수위 손을 들어주면서 해소됐지만 다른 공기업·산하기관 인사는 여전히 갈등 상태다. 새 정부가 출범하더라도 인사 갈등은 계속될 것이다. 김오수 검찰총장, 김진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장 등의 거취는 화약고다. 공기업과 정부 기관에는 여전히 문재인정부 사람들이 포진해 있다. 임기도 많이 남았다. 인사는 결국 누군가의 밥그릇을 빼앗는 일이다. 어떤 식으로든 이들을 정리하려는 순간 갈등이 폭발할 것이다.

윤 당선인이 한 후보자를 선택한 것처럼, 문 대통령과 회동해 집무실 이전 문제를 풀어낸 것처럼 이들과도 공존을 모색했으면 한다. 임기를 보장하는 대신 협조를 얻어내는 타협이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이다. 타협을 선택하지 않았던 박근혜정부와 문재인정부는 결국 법적 대가를 치렀다.

최악의 비호감 대선을 지나니 가장 기대감이 낮은 당선인 시대가 열렸다. 이곳저곳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많다. 그런데 윤 당선인이 이런 평가에 크게 괘념하지 않는 것 같은 모습이다. 적어도 외부에서 보기엔 그렇다. 과도한 역사의식이나 소명의식도 보이지 않는다. 차선이나 차차선 선택도 망설이지 않는다. 윤 당선인이 성공적인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단초는 이런 ‘쿨함’에서 찾아야 한다. 5년 임기 내에 모든 것을 해결하겠다는 과욕을 부리지 않는 것, 최선이 어렵다면 차선을 선택하는 것, 반대 세력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길에 해답이 있을 것이다. 윤 당선인의 한 달이 보여준 교훈이다.

남도영 논설위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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