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원준 칼럼]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은

국민일보

[태원준 칼럼] 문재인 대통령의 선택은

입력 2022-04-15 04:20

검수완박 법안 국회 통과하면 공포-거부, 선택해야 하는 文
퇴임하는 대통령에게 뭘 택해도 욕먹을 법안 내밀며
‘방탄’ 택하리라 믿는 민주당 잔인하고 무례하다
그 선택의 시간이 찾아올 경우 치명적 오점 남기는 일 없기를

이렇게 지독한 외통수는 또 없을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이 밀어붙이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법안이 국회를 통과할 경우 문재인 대통령은 선택을 해야 한다. 서명·날인해 법률로 공포하거나,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로 돌려보내거나. 이도 저도 아니게 뭉갤 수 있는 절충점은 없다. 민주당은 5월 3일 현 정부 마지막 국무회의에서 공포한다는 스케줄을 이미 공개했다. 대통령에게 주어진 공포 시한은 보름이니 그냥 놔둔 채로 임기를 마칠 순 있는데, 후임자가 거부할 게 뻔해서 이는 거부권 행사와 다르지 않다. 일단 공포는 하되 3개월 시행 유예 기간에 새 정부가 대안을 찾아보도록 우려의 메시지를 내놓는다? 민주당이 저렇게 국회를 장악한 상황에서는 공허한 제스처일 뿐이다. 문 대통령은 결국 검수완박에 찬성하든지 반대하든지 양자택일의 상황을 피할 수 없게 된다.

민주당은 잔인하다. 퇴임하는 대통령에게 어느 쪽을 택해도 욕먹을 수밖에 없는 선택지를 들이밀고 있다. 공포하면 국가적 혼란과 국민 피해를 초래했다고 두고두고 비난받을 테고, 거부하면 5년 동안 지지율을 지탱해준 강성 지지층에서 배신자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검수완박 입법을 당론으로 채택한 민주당 의원총회는 문 대통령에게 이런 부담을 지우는 자리였다. 그것을 표결도 없이 만장일치로 결정했다는 발표는 정말 놀라웠다. 대통령에게 작은 흠집이라도 날세라 옹위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반대론을 편 의원이 꽤 있었다는데, 의총 이후 아무도 불만을 드러내지 않았다. 이튿날 비대위 회의에서 조응천 채이배 비대위원이 발언순서에 마이크를 잡지 않은 것 정도가 유일한 항의 표시였다. 거대 정당의 수준이 이렇다. 다들 그냥 묻어가고 있다.

민주당이 압도적 의석을 앞세워 밀어붙인 법안 중에 검수완박만큼 반대가 많은 것도 없었다. 정당, 법조, 언론, 시민단체에서 우군이던 이들까지 전부 하지 말라고 했다. 공익을 위한 거라면 이런 상황에선 다시 생각해봐야 하는 법이다. 그래도 강행한다는 것은 목적이 사익에 있음을 웅변한다. 자신들을 향할지 모르는 검찰 수사를 차단하기 위해 국가의 중대범죄 수사 기능을 아예 망가뜨리는 작업. 민주당은 지금 그 일에 문 대통령을 끌어들이고 있다. 대통령도 이심전심일 테니 못 이기는 척 공포할 거라는 믿음일 수도, 당신을 보호해줄 법안이니 당신이 서명하라는 압박일 수도 있는데, 어쨌든 민주당의 강행 배경에는 문 대통령이 이것을 법률로 선포하리란 전제가 깔려 있다. 일국의 대통령이 국민에게 돌아갈 피해를 외면하고 ‘방탄 법률’의 사익을 택할 거라는 발상, 너무 무례하지 않은가.

청와대는 침묵하고 있다. 침묵은 문 대통령이 지난 5년간 자주 사용한 정치적 언어였다. 그 속에 담긴 뜻은 추측할 뿐이었고, 무언의 시간이 끝날 때나 실체가 확인되곤 했다. 재작년 추미애 법무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이 갈등할 때 그의 침묵은 유독 길었다. 무리한 과정을 거쳐 윤 총장 징계안이 올라가자 아주 신속히 재가하며 그동안 말하지 않았던 속내를 비로소 드러냈다. 지난해 민주당이 언론중재법안을 밀어붙일 때도 문 대통령은 침묵했는데, 당시엔 물밑에서 참모를 당에 보내 사실상 만류했다. 결국 민주당이 강행을 포기하자 환영하는 메시지로 침묵을 깼다. 검수완박 국면이 펼쳐지면서 다시 침묵의 시간이 흐르고 있다. 민주당과 강성 지지층은 그 속에 담긴 뜻이 전자와 같으리라 믿고 있는 반면, 이 법안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은 후자와 같기를 기대한다. 그 사이에 놓인 문 대통령은 지금 이 시간이 무척 힘들 것이다.

대통령이 돼서 청와대에 들어가 6개월쯤 지나면 역사와 대화를 시작하게 된다고들 한다. 당에서 나누던 정치적인 대화, 유권자들과 나누던 서민적인 대화가 끊기는 상황에다 청와대의 권위적 구조가 조성하는 고립감과 중압감이 더해져 홀로 사색하는 시간이 많아진다는 뜻이다. 역사에 기록될 자리에 앉아서 어떻게 기록될지 생각하며 문 대통령도 많은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만약 민주당이 저 법안을 통과시켜 정부로 보낸다면, 그 선택의 시간에 다시 한 번 역사와 대화를 나눠보길 권한다.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결정이 될 이 선택은 자칫 지난 5년간의 모든 공과를 떠나서 국민들의 머릿속에 문 대통령을 기억하는 한 줄로 남게 될지도 모른다.

태원준 논설위원 wjtae@kmib.co.kr

아직 살만한 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