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훈 칼럼] ‘BTS에 의한, BTS를 위한’ 병역 특례법?

국민일보

[이동훈 칼럼] ‘BTS에 의한, BTS를 위한’ 병역 특례법?

입력 2022-04-20 04:20

입시 공정성 시비 한창인데
BTS 군면제 문제도 가세해

정치권 등은 편협한 표심용
국위선양 기준은 지양해야

능력주의 앞서 겸손 자세로
K문화 발전 위한 고민 절실

3년 전 미국 아이비리그에 자녀를 합격시킨 재미 교포를 만난 적이 있다. 그는 우리나라 입시 비리를 폭로한 드라마 ‘스카이 캐슬’ 얘기가 나오자 미국도 마찬가지 상황이라고 했다. 자신이 시험 문제 유출 루트는 물론 브로커도 연결할 수 있다는 등 귀를 의심할만한 말들이 쏟아졌다. 며칠 뒤 그의 말은 ‘거짓말처럼’ 사실로 드러났다. 입시상담가가 8년간 학부모 750여명으로부터 돈을 받고 성적을 조작해 자녀들을 명문대학에 합격시킨 입시 스캔들이 터진 것이다.

그 수법도 가공스럽지만 이들 자녀 대부분이 자신들의 노력과 능력만으로 대학에 합격한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점이 더 충격이었다. 하버드 대학의 마이클 샌델 교수는 학벌 지상주의로 변질된 미국 능력주의의 현주소를 해부한 ‘공정하다는 착각(The Tyranny of Merit)’에서 이렇게 설명했다. “능력주의가 원칙이 되는 사회에서는 승리자가 ‘나 스스로의 재능과 노력으로 여기에 설 수 있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이를 간파한 입시컨설턴트는 학부모들에게 이를 주지시켰고 학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이를 비밀에 부쳤다.”

연방수사국(FBI)의 대대적 기획 수사로 미국 내 입시 비리는 잦아들었다. 그러나 한국 사회에서 터진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자녀입시 비리 문제는 3년이 지난 지금도 현재진행형이다. 여권 지지자들은 “재수 없게 걸렸다”거나 “남들도 다 하는데 특정인만 욕을 먹느냐”며 여전히 조 전 장관 가족을 옹호하고 있다.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자녀 의대 편입 의혹엔 ‘조국만큼만 털어라’는 등의 진영 논리까지 가세했다.

입시의 공정성 시비에 더해 방탄소년단(BTS)의 병역 면제 이슈로 형평성 문제까지 불거졌다. 시대 변화를 반영해 대중예술도 면제 대상에 포함돼야 함은 당연지사지만 단순히 찬성 여론이 높다고 밀어붙일 사안은 아니다. 묵묵히 병역의무를 다하고 있는 다른 젊은이들 설득이 우선이다. 군 면제에 찬성하는 측은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딴 축구선수 손흥민과 빌보드 차트 1위에 오른 BTS 모두 사익을 추구하며 국위를 선양했다는 면에서 피장파장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손흥민의 경우 사업적인 가치가 배제된 국가적인 목표를 위해 대표팀에 차출돼 온 반면 BTS는 애초에 빌보드 진입을 목표로 한 것은 아니었다는 의견도 귀담아들어야 한다.

병역 형평성 문제에도 샌델 교수의 능력주의 담론을 대입해 보면 실마리를 찾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그는 능력주의적 성취가 개인적 노력 이외에 수요와 공급의 법칙에 따라 당시 소비자들의 수요에 맞춘 공급을 제공한 사람에게 돌아간다고 주장한다. 이 경우 한 사람의 성공을 그 사람의 공으로만 인정해 주기는 어려우므로 성과에 대해 겸손해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화주의의 대부’인 경제학자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도 ‘자유헌정론’에서 경제적 보상이 능력과 비례해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고 재능조차도 행운의 결과라고 했다. 이에 견주어 보면 빌보드 1위 성과에는 BTS의 재능과 노력 외에도 인기와 취향, 시대적 흐름이 좌우하는 대중가요의 특성상 행운도 따랐음을 무시할 수 없다. 게다가 BTS 멤버 7명 외에 대형기획사의 마케팅 기획력과 대규모 투자, 1500만여 ‘아미’들의 성원까지 종합적으로 어우러진 것임을 감안해 형평성을 따져볼 필요가 있다.

국회 국방위 야당 간사가 최근 방송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면 2590억원 정도 경제유발 효과가 나오는데 빌보드 우승하면 1조7000억원 정도 효과가 있다”며 경제 효과를 국위선양의 잣대로 제시한 것은 편협한 기준이라는 반발만 살 뿐이다. BTS 멤버 슈가는 2020년 6월 발표한 ‘어떻게 생각해?’에서 “군대는 때 되면 알아서들 갈 테니까”, “우리 이름 팔아먹으면서 숟가락을 얹으려고 한 ×끼들 싸그리 다 닥치길”이라고 했다. BTS의 입대 생각이 변치 않음을 믿고 있는 아미들은 정치권이 BTS 팬덤에 기대 표를 얻어보려고 군 면제를 부추기는 게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미국의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그의 통치 능력을 인정해 종신 대통령을 권하는 국민들의 제안을 거절하고 후임자에게 권력을 양보했다. 미국 학생들이 능력보다 중요한 겸손의 의미를 배울 때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듣는 일화라고 한다. ‘BTS만을 위한’ 병역특례법 개정에 앞서 전체 K문화 발전을 위한 고민과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이동훈 논설위원 dh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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