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임대차 3법 알면 검수완박이 보인다

국민일보

[여의춘추] 임대차 3법 알면 검수완박이 보인다

고세욱 논설위원

입력 2022-04-22 04:08

“집 없는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을 보장하는 대혁신이다.”(당시 더불어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 “대한민국 국민이 평생 집의 노예로 사는 것을 벗어나서 경제의 주인이 되기를 결정한 날이다.”(윤호중 법사위원장)

2020년 7월 30일 전월세상한제와 계약갱신청구권을 골자로 한 주택임대차보호법(임대차 3법)이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된 뒤 감격에 북받친 민주당 지도부의 발언이다. 김 전 원내대표가 법안 통과 직후 주먹을 들어 불끈 쥔 채 웃는 모습은 임대차법 전쟁 승자의 위용을 상징했다. 임대차법이 시행되면 전월세 가격이 폭등할 것이라는 야당 주장에 박광온 당시 민주당 최고위원은 “주택시장의 교란을 부추기는 자극적 선동”이라고 비판했다.

민주당 인사들의 말을 지금 복기해보면 실소만 나온다. 2020년 7월 4억6000만원이던 서울 아파트 평균 전셋값은 지난 3월 6억3000만원으로 치솟았다. 부동산114에 따르면 현 정부 임기가 시작된 2017년 5월부터 2020년 7월까지 3년2개월간 전국 전셋값 상승률은 10.45%였지만, 임대차법 개정 후 지난달까지 1년7개월 동안 27.33% 올랐다. ‘집의 노예’는 노예만 못한 난민 신세가 됐고 전세 가격 폭등은 ‘선동’이 아니라 팩트였다. 임대차법은 결과뿐 아니라 처리 과정도 문제투성이었다. 국회 상임위원회에 상정된 지 이틀 만에 전체회의, 사흘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나흘 만에 국무회의 의결을 마쳐 곧바로 시행됐다. 국회법에 규정돼 있는 소위원회 심사·보고, 축조 심사(의안을 한 조항씩 낭독하며 의결), 찬반 토론도 생략됐다. 흔한 공청회도 없었다. 법안 졸속처리 역사를 쓴다면 단연 으뜸이다.

호된 홍역을 치렀으면 정신을 차릴 법한데 거대 공룡(민주당)이 관성을 버리기란 그리 어렵나 보다. 임대차 3법 후유증이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의 장이 열렸다. 추진 과정을 보면 놀랍도록 유사하다. 지지층에 기댄 채 뇌피셜에 가까운 명분(주거 안정↔검찰 개혁)을 만든 뒤 반대·우려의 목소리(임대인·다주택자↔검찰·법원·시민단체 등)에 아랑곳하지 않고 속전속결로 처리한다는 점. 임대차 3법은 “임대인들이 미리 보증금을 많이 올릴까봐” 법안처리를 서둘렀다고 했다. 2년 후 검수완박에 대해선 “새 정부의 공안통치가 우려돼” 취임 전에 해치우겠단다. 벌어지지도 않은 미래 상황을 가정해 법을 만들겠다는 의도마저 같다. 언제부터 정당이 예언자 역할까지 맡아 왔나. 민주당은 현 정부 임기 5년이 다 되도록 가만히 있다가 마지막 3주를 남기고 검수완박 법 통과에 소매를 걷어붙였다. 100년 역사의 전세 제도를 단 4일 만에 난도질하더니, 70년 역사의 형사 사법제도도 번갯불에 콩 볶듯 손보려 한다. 위장 탈당 등 별의별 꼼수도 동원했다.

그러나 졸속의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임대차 3법으로 전세 매물이 줄어들자 전셋값이 뛰었고 집값으로 이어졌다. 비싼 전세로 들어갈 바에 차라리 집을 사겠다는 심리 때문이다. 부동산 플랫폼 KB리브온에 따르면 2017년 5월~2020년 6월 전국 아파트 매매가는 7.63% 올랐지만 임대차 법 시행 이후 지난 3월까지 26.79% 급등했다. 집값과 함께 세금도 뛰었다. 영끌 열풍이 일었고 가계부채가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민주당은 뒤늦게 부동산 정책에 대해 사과했지만 보궐선거와 대선 패배를 피하지 못했다. 지난해 4분기 임대차 거래에서 가계에 부담을 주는 월세 비중이 사상 처음 40%를 돌파했다. 서민 주거 안정이라는 취지도 무색해졌다. 임대차 3법은 한국경제 아킬레스건인 부동산 문제와 부채의 위험을 키운 결정체다. 졸속 법안의 나비효과는 이처럼 큰 상흔을 남겼다.

민주당을 제외한 거의 모든 집단이 반대하는 검수완박의 미래라고 다를 리 없다. 민주당 황운하 의원 말대로 검수완박이 범죄 총량이 아닌 수사 총량을 줄인다고 하면 법 통과 후 혼란상은 불을 보듯 뻔하다. 민주당은 그때그때 땜질 처리에 급급할 것이다. 그리고 내후년 총선을 앞두고 사과 쇼를 재탕할 듯싶다. 부동산과 마찬가지로 “국민 생각을 헤아리지 못해 상처를 줘 죄송하다”고. 다른 곳도 아닌 입법기관이 잘못을 반복하면 국민 삶에 재앙이 된다. 국회 다수당이 심사숙고 없이 매번 이러니 국가로선 불행일 뿐이다. 쳇바퀴는 다람쥐만 도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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