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동철 칼럼] 내로남불 악순환

국민일보

[라동철 칼럼] 내로남불 악순환

입력 2022-04-27 04:20

맹목적 편가르기와 정쟁화로 후보자 검증 책무 외면하는 국회 인사청문회 재연될 조짐
여야는 당리당략의 이중 잣대 아닌 국민 눈높이로 검증하고 尹당선인은 결과 존중하길
‘공정과 상식의 회복’ 실천으로 국민 신뢰 얻는 계기 만들어야

25~26일 열린 한덕수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가 파행됐다.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 소속 청문위원들이 자료 제출 부실을 이유로 이틀 연속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민주당과 정의당은 한 후보자가 의혹과 관련된 주요 자료를 제출하지 않아 청문회를 여는 게 의미가 없다는 입장이다. 윤호중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자료 없이 자리 없다. 총리 될 사람이 국민 검증을 거부한다면 우리 당은 부적격 총리 후보자를 국민의 이름으로 거부하겠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측은 “민주당의 자료 요구는 너무도 비상식적이며 새 정부 발목 잡기”라며 민주당에 책임을 돌렸다. 과거 인사청문회 정국에서 숱하게 접했던 여야의 판에 박힌 논리다. 문제는 주장의 일관성이 없다는 것. 여야가 바뀌면 정당들의 주장과 논리는 손바닥 뒤집듯 바뀐다.

“후보자의 도덕성, 공직 적합성을 검증할 기초적, 필수적 자료조차 제출하지 않고 야당의 협조를 구하는 것은 도저히 인사청문을 받는 후보자의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이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청문회가 진행될 수 없다.” 민주당의 주장인 것 같지만 2019년 5월 문재인정부 출범 당시 이낙연 총리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정우택 대표 권한대행 겸 원내대표가 한 말이다. 당시 민주당은 “자료 제출 부실을 이유로 청문회 보이콧까지 제기하는데 누가 봐도 새 정부 발목 잡기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내로남불’은 여야를 가릴 것 없이 우리 정치인들의 고질인데 인사청문 정국에서 더 극명하게 드러난다. 비슷한 내용의 의혹인데도 야당일 때는 부풀려 후보자 흠집 내기에 급급하고 여당일 때는 뻔한 사실까지도 외면하며 방패막이를 자처한다. 의혹은 대동소이한데 검증 잣대는 여야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이런 낯 뜨거운 짓을 하고도 부끄러워하는 기색조차 없다.

2000년 도입된 인사청문회는 국회가 고위 공직 후보자의 업무 수행 능력과 자질, 도덕성 등을 검증함으로써 대통령의 자의적 인사권 행사를 견제하기 위한 제도다. 철저하고 공정한 인사 검증은 국민이 국회에 부여한 책무다. 그런데도 여야 의원들은 공익을 외면하고 당리당략에 사로잡혀 제도 취지를 스스로 훼손해 왔다.

이번 인사청문회도 과거와 별반 다를 것 같지 않아 걱정이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소모적인 진흙탕 공방을 벌인 끝에 뒤늦게 흠집투성이 내각이 출범할 가능성이 높다. 거대 야당의 동의가 필요한 총리 후보자는 어떤 식으로든 타협점을 찾겠지만 야당 동의 없이도 임명할 수 있는 장관들은 인사청문 경과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은 상태에서 임명이 강행될 것이다. 문재인정부에서도 숱하게 경험한 일이다.

인사청문회가 부적격자를 걸러내는 검증의 과정이 아니라 맹목적 편가르기와 정쟁의 장으로 변질된 건 국가적으로 불행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민이 기대했던 여야 협치는 작동할 수 없다. 국민들의 정치 불신도 커지기 마련이다. 해소되지 않은 의혹들을 덕지덕지 달고 임명된 장관들이 리더십을 발휘해 부처를 잘 이끌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이런 부조리한 상황의 반복, 악순환을 끝낼 수는 없을까. 그러려면 여야가 당리당략을 내려놓고 인사청문회를 상식과 합리가 작동하는 검증의 장으로 되돌려놓는 수밖에 없다. 총리와 18개 부처 장관 후보자들 가운데 일부는 자녀 입시와 취업·병역 특혜, 부동산 편법 증여 및 탈세, 이해충돌 등의 의혹에 휩싸여 있다. 청문위원들은 자신들이 아니라 상식과 국민 눈높이에서 후보자를 검증하고 적격 여부를 판단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후보자가 중대한 의혹을 제대로 소명하지 못하거나 사전 검증 과정에서 감췄던 큰 흠결이 드러나면 단호하게 지명을 철회해야 마땅하다.

민심은 바뀌고 정권은 유한하다는 걸 우리 모두 알고 있다. 여야 구분 없이 적용할 동일한 검증 잣대에 합의해야 내로남불 인사청문회의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 상대가 먼저 바뀌기만 바란다면 한 발짝도 나아갈 수 없을 게다. 새 정부를 이끌 윤 당선인이 먼저 손을 내밀었으면 좋겠다. 대선 과정에서 기치로 내건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실천에 옮김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좋은 기회 아닌가.

라동철 논설위원 rdchu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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