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태 칼럼] 여의도 막장 드라마, 그리고 대통령의 시간

국민일보

[박정태 칼럼] 여의도 막장 드라마, 그리고 대통령의 시간

입력 2022-05-03 04:20

민주당의 입법 독재가 초래한
살풍경…꼼수·편법 속출하고
국회선진화법 정신 완전 유린

검수완박 법안은 현 정권 비리
수사 방탄용…사회 약자까지
희생양 삼는 독소 조항도 있어

文대통령 거부권 외엔 답 없어
국민과 역사 돌아보고 결단한
뒤에 아름다운 퇴장했으면

여의도 막장 드라마를 볼 때마다 한숨이 나온다. 최근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을 둘러싼 또 한 편의 막장 드라마는 가히 역대급이다. 퇴행적 후진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대한민국 국회의 현주소였다. 온갖 꼼수와 편법이 속출한 것은 물론 기상천외한 수법까지 동원됐다. 검수완박 법안을 강행하는 더불어민주당에 국민은 안중에도 없었다. 법사위 안건조정위를 무력화한 위장 탈당, 야당의 필리버스터를 강제 종결시키려는 회기 쪼개기 등이 난무해 다수당의 입법 독주를 막기 위한 국회선진화법의 정신은 완전히 유린됐다. 여야 대치로 원안과 대안, 수정안 등이 뒤범벅돼 어떤 법안이 통과됐는지 모를 정도로 졸속 처리되기도 했다. 거대 정당의 입법 독재가 초래한 살풍경이다.

결국 지난 주말에 누더기가 된 검찰청법 개정안이 본회의를 통과했고,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상정됐다. 이 과정에서 국회는 또 아수라장이 됐다. 욕설과 삿대질에 몸싸움으로 얼룩진 동물 국회가 재연됐다. 민주당이 마지막 남은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처리할 본회의는 오늘 오전 10시 개최된다. 국회법상 평일 본회의는 오후 2시에 열어야 하지만 대통령이 오늘 주재하는 마지막 국무회의에 법안을 올려놓기 위해 앞당겼다. 국회에서 정부로 이송된 법안은 국무회의 의결을 거쳐야 공포된다. 당초 오전으로 공지돼 본회의와 겹친 국무회의가 연기된다면 청와대와 정부 여당이 합작한 꼼수 정치의 완결판으로 불러도 무방하겠다.

물론 국민의힘도 책임이 작지 않다. 국회의장 중재안에 덜컥 합의했다 야합이라는 비난이 거세지자 3일 만에 파기함으로써 민주당의 강행 처리에 명분을 제공했다. 원래 민주당만 국민 심판을 받으면 되는 꽃놀이패였는데 첫 단추를 잘못 꿰면서 스텝이 꼬여 버렸다. 그러니 별다른 대응책도 없이 총력 저지하는 모양새만 연출하는 것 아닌가. 판단 잘못에 대한 책임을 통감해야 마땅하다.

검수완박 법안은 곧 야당으로 전락할 민주당 등 여권 인사들을 위한 방탄막으로 악용될 게 뻔하다. 개정 검찰청법은 검찰 수사 대상을 6대 범죄(부패·경제·공직자·선거·방위사업·대형참사)에서 부패·경제 범죄로 축소한 게 골자다. 다만 검찰의 선거 범죄 수사는 6·1 지방선거 범죄의 공소시효가 만료되는 올 연말까지 가능하다. 문제는 공직자 범죄 수사가 박탈됨에 따라 울산시장 선거 개입, 월성 1호기 경제성 평가조작,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사건 등이 누구 말마따나 그냥 증발해버릴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심히 우려되는 대목이다.

백번 양보해 검찰청법은 정치권과 검찰 등 기득권 세력 사이의 문제로 치부할 수도 있다. 하지만 검찰의 보완 수사 등을 제한한 형사소송법 개정안은 국민 기본권과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사태의 심각성이 크다. 보완 수사 제한으로 여죄 수사 등 실체적 진실 발견에 어려움이 예상되는데다 서민 피해자를 울리는 독소 조항마저 들어 있기 때문이다. 고소인 등과 달리 경찰의 무혐의 처분에 대한 이의신청 주체에서 제3자인 고발인을 제외한 게 대표적이다. 경찰이 사건을 덮어 불송치 결정을 해도 고발인은 검사의 판단을 구하는 불복 절차를 밟을 수 없다. 이 경우 직접 고소가 여의치 않아 시민단체의 도움을 받아온 사회적 약자들이 피해를 볼 수 있다. 국민의 평등권, 재판청구권을 침해하는 조항이다.

그럼에도 민주당은 ‘고발인 제외’를 왜 끼워넣었을까. 권력 비리를 감시해온 시민단체들이 고발 형식으로 정치인 관련 사건을 제기해 왔기에 이를 차단하는 효과를 노린 듯하다. 성남FC 후원금 의혹이나 블랙리스트 의혹 등이 시민단체나 정당의 고발로 시작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가 쉽겠다. 향후에는 검찰 그물망에서 벗어나 경찰 단계에서 무마하겠다는 심산이겠다. 정치인 자신들을 겨냥한 검찰 수사를 요리조리 피하기 위해 애꿎은 국민을 희생양으로 삼는 낯부끄러운 작태다.

입법이 완료되면 이를 되돌릴 수 있는 건 대통령의 거부권밖에 없다. 상황 전개를 보니 문재인 대통령이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하지만 국민과 역사를 돌아보며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헌정질서 수호 의무가 있다는 거창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 정파적 이익을 통해 퇴임 후 안전 보장을 택할 것인지, 아니면 평범한 대다수 국민의 인권 보호를 택할 것인지의 결단일 뿐이다. 그간의 실정에도 불구하고 1주일 뒤 아름답게 퇴장하는 대통령을 보았으면 한다.

박정태 수석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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