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주 칼럼] 대한민국 엘리트의 지독한 ‘아빠 찬스’

국민일보

[한승주 칼럼] 대한민국 엘리트의 지독한 ‘아빠 찬스’

입력 2022-05-04 04:20

중고생 자녀 이름 끼워 넣기
교수 사회 ‘논문 품앗이’ 범죄
교육부 징계 결과 실망스러워

김인철 정호영, 불공정 논란에
둔감… 학계 도덕불감증 깊어
국민 눈높이에 턱없이 부족

윤석열, 공정과 상식 기치로
당선됐으나 첫 내각 후보자들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아

서울대 교수의 딸 의대 보내기 프로젝트는 치밀했다. 자신의 논문에 딸 이름을 올리는 낮은 수는 쓰지 않았다. 대신 갑을 관계를 이용해 승진을 앞둔 후배 교수의 논문에 등재했다. 고등학생 딸은 기여도가 매우 낮았지만 과학논문인용색인(SCI)급 논문 공저자가 됐다. 이 논문을 아버지가 심사위원으로 있는 학술대회에 제출해 상까지 받았다. 이렇게 쌓은 스펙을 대학 입시에 활용했다. 자연계열에 진학한 후 의학전문대학원에 편입해 의사가 됐다. 2020년 서울대는 이 논문을 ‘연구 부정’으로 판정했으나 달라진 건 없었다. 교수는 징계 한번 받지 않고 여전히 서울대에 재직 중이다. 후배 교수는 ‘경고’를 받았다. 말 그대로 경고일 뿐 불이익은 없었다.

학계에는 ‘교수 집 강아지는 1 저자, 고양이는 2 저자’라는 우스개가 있다. 누구를 저자로 올릴지는 전적으로 지도교수 마음이라는 것이다. 중고생 미성년 자녀의 이름을 자신이나 동료 교수의 논문에 끼워 넣는 건 교수 사회의 오랜 악습이다. 그들은 끼리끼리 ‘논문 품앗이’로 자녀의 입시 스펙을 만들었다. 2017년 11월 국민일보를 통해 이런 사례가 폭로된 후 사회적 공분이 들끓었다. 교육부는 이를 계기로 2007~2018년 발표된 논문 가운데 대학 교원과 미성년자가 공저자로 등재된 사례를 조사했다. 그러나 최근 교육부가 내놓은 최종 조사 결과는 실망스럽기만 하다.

전체(1033건)의 10%도 안 되는 96건만 부정 판정을 받았다. 입학이 취소된 건 5명에 불과했다. 대부분 징계 시효가 지났다는 게 주된 이유인데 그렇게 넘어가면 그만일까. 부정 판정을 받은 96건의 사례를 공개하고, 입학 취소도 검토해야 할 일이다. 실태 조사를 모든 대학 모든 시기로 확대해 교수 자녀 입시비리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 논문은 연구자의 열정과 시간, 피땀과 눈물의 결정체다. 부모 잘 만나 여기에 무임승차하는 건 범죄다. 논문 품앗이는 교수의 양심을 저버린 불법 행위다. 교수직을 박탈해야 할 정도의 중대 사안이다. 그런데도 교육부는 이번 조사에서 논문 품앗이를 아예 제외했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난을 피하기 어렵다.

따지고 보면 김인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온갖 불공정 논란에도 당당했던 것은 학계의 도덕 불감증과 교육부의 안일한 태도 때문이 아니었을까. 윤석열정부 초대 내각 후보자 인사청문회는 우리 사회 지도층에 얼마나 부모 찬스가 널리 퍼져 있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동시에 정작 그들은 이에 얼마나 둔감한지를 보여준다. 능력 중심으로 지명했다는 ‘서울대 출신 60대 남성’이 주류인 이들은 서민과는 동떨어진 딴 세상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 엘리트층이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죄책감 없이 자녀의 교육과 취업 등에 관여한 의혹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김 후보자는 ‘의혹 백화점’이었다. 그가 한국풀브라이트 동문회장으로 재임하던 시절 딸이 1억원에 달하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아 아빠 찬스 논란이 일었다. 동문회장 재직 시절은 아니지만 배우자와 아들도 경쟁이 치열한 이 장학금을 받았다. 대학을 관리 감독하고 교수 사회의 비리를 척결해야 할 교육부 장관으로서 자격이 이미 없었다. 도덕성이 결여된 수장이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는가. 스스로 물러난 건 당연한 수순이다.

아빠 찬스 논란에서 가장 자유롭지 못한 이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다. 경북대병원 원장과 부원장 재직 당시 아들과 딸이 경북대 의대에 편입학했다. 보통 의대 편입은 의대 입학보다 더 힘들다고 한다. 국민은 이 과정이 공정했다고 믿지 않는다. 그런데도 사퇴는커녕 청문회장에 섰다. 정 후보자는 아직도 뭐가 잘못인지, 자신이 왜 자격이 안 되는지 모르는 것 같다.

김인철 정호영 후보자를 보면 인사 검증을 하는 사람이나 당사자나 아빠 찬스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한 듯하다. 이들은 어쩌면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의 입시 비리 재판을 지켜보며 진영을 떠나 측은지심을 가졌던 건 아닐까. 대다수 국민은 조국 사태를 보며 분노했다. 박탈감과 소외감을 느꼈다. 청년들은 공정을 얘기했다. 윤석열 당선인은 바로 그 공정과 상식의 회복을 기치로 당선됐다. 그런데 윤 정부 첫 내각 인사들은 대체로 공정하지도 상식적이지도 않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은 당황스럽고 괴롭다. 대한민국 엘리트들의 이 지독한 자식 사랑을 어찌하면 좋을까.

한승주 논설위원 sjha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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