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윤석열정부의 1년과 한동훈의 가치

국민일보

[여의춘추] 윤석열정부의 1년과 한동훈의 가치

남도영 논설위원

입력 2022-05-06 04:05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달 25일 방송된 손석희 전 JTBC 앵커와의 인터뷰에서 분노의 감정을 드러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대상이었다. 문 대통령은 “‘반드시 저지하겠다’는 표현을 쓰는 것은 굉장히 부적절했다고 봅니다”라고 말했다. “예, 뭐, 그냥 편하게 국민을 들먹이면 안 되죠. 대한민국의 정의를 어떤 특정한 사람이 독점할 수는 없는 것이죠”라고도 했다. 한 후보자를 비판한 말이자, 검찰을 비판한 말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검찰의 횡포, 선택적 정의, 집단행동에 대한 분노였다. 검수완박에 집착했던 더불어민주당의 모습에서 일종의 공포가 느껴졌다. 윤석열정부가 시작되면 수사의 칼바람이 휘몰아칠 것이라는 공포다. 지난 3월 25일 서울동부지검의 압수수색이 시작이었다고 본다. 검찰은 3년2개월 동안 묵혔던 ‘산업통상자원부 블랙리스트 사건’ 수사를 재개했다. 정권이 바뀌었다는 분명한 신호였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관련자들의 유죄가 확정됐다. 산업부 블랙리스트 사건 관련자, 즉 문재인정부 사람들도 유죄 가능성이 높다. 문 정권 입장에서는 목 앞에 칼이 들어온 셈이다. 민주당은 4월 12일 검수완박을 당론으로 채택했다. 원내 1당 의석으로 스크럼을 짜고 검찰수사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을 온몸으로 보였다.

민주당이 검수완박을 꺼내 들자, 윤 당선인은 한동훈 법무부 장관 카드를 선보였다. 언론도 놀랐고 국민도 놀랐다. 가장 크게 놀란 것은 민주당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한 후보자 지명은 민주당에 대한 선전포고였다. 한 후보자는 누구나 인정하는 검찰 특수통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그를 “조선제일검”이라고 불렀다. 윤 당선인은 법무행정의 현대화, 글로벌 스탠더드, 영어 실력을 인선 배경으로 설명했다. 며칠 후면 윤석열정부가 출범한다. 한 후보자가 법무부 장관에 취임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국민 모두가 알고 있다. 한 후보자는 장관 지명 후 많은 말을 쏟아냈다. “지난 5년간 무슨 일이 있었길래 명분 없는 야반도주까지 벌이나”(지난달 15일), “(문 대통령의 비판과 관련) 현장을 책임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몸 사리고 침묵하는 건 직업윤리와 양심의 문제”(지난달 26일). 자신이 어떤 길을 걸어가려는지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들이다.

윤석열정부의 대표선수는 한동훈이다. 한덕수 총리 후보자도 아니고 권성동 원내대표도 아니고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도 아니다. 윤 당선인은 한 후보자 지명을 통해 집권 초기 정권을 어떻게 운영할 것인지를 말없이 보여줬다. 윤 당선인은 후보 시절 “문재인 정권에서 불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도 법에 따라, 시스템에 따라 상응하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원론적인 말이다. 역대 정권 모두 집권 초반 수사를 통해 과거 정권 비리를 정리했다. 그런데 발언 당사자가 검찰총장 출신 윤 당선인이고, 법무부 장관이 한동훈 검사장이라면 체감온도가 다르다.

윤석열정부의 첫 1년은 격렬한 대결의 시간이 될 가능성이 높다. 한 후보자가 장관에 취임하면 수사가 시작될 것이다. 검수완박 법안 통과로 제약이 있겠지만, 다양한 우회로가 존재한다. 지금 거론되는 많은 수사가 본격화될 것이다. 이쪽이 보기엔 시스템에 따른 수사고, 저쪽이 보기엔 정치보복이다. 신구 권력의 전면전이다. 민주당 168석의 힘은 간단치 않다. 모든 세력이 반대하는 검수완박 법안을 통과시킨 힘이다. 당장 한덕수 후보자 국회 인준이 쉽지 않다. 사회 곳곳에 포진한 친문 세력의 힘도 만만치 않다. 잊혀진 삶을 살겠다는 문 대통령이 예상외로 자주 등판할 수도 있다. 윤석열정부 110개 국정과제 중 네 번째가 한 후보자가 담당할 ‘형사사법 개혁을 통한 공정한 법집행’이다. 최악의 상황은 공정한 법집행이 나머지 109개 국정과제를 뒤덮어버리는 경우다. 지금 윤 당선인은 한 후보자를 앞세워 과거 정권과 싸우는 길에 들어섰다. 미래를 향해야 할 때 과거를 돌아보는 것은 현명한 선택이 아니다. 국민통합은 추상적인 레토릭이다. 윤 당선인이 마주친 현실 정치에서 국민통합이란 결국 민주당과의 정치적 타협을 의미한다. 민주당이 마음에 들어서 하는 타협이 아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타협이다. 윤 당선인은 타협 대신 대결의 길을 선택했다. 한 후보자는 훌륭한 인재다. 그러나 정권 첫 1년과 맞바꿀 만큼 가치가 있는지 모르겠다.

남도영 논설위원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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